원문 출처 : http://www.kogado.com/html/kuroneko/sr/

번역문 작성 : CARPEDIEM(mine1215@lycos.co.kr)

게재 : C'z the day(http://mine1215.cafe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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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용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 『심포닉 레인』의 소개 페이지에 실린 캐릭터별 단편 스토리를 번역한 것입니다. 게임 본편보다 약간 앞 시기의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만약 게임을 플레이중이라면 모두 클리어한 다음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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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mphonic Rain Short Story
Prelude 04 - 『Liselsia Cesarini』


【1】
3학년쯤 되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된다.
학생 주제에 건방지다고, 우리 부모님이라면 틀림없이 그렇게 말하겠지. 그리고 더 열심히 하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달콤하지 않다. 사실, 난 열등생이다.

내가 포르텔과에 진학한 것은 그저 우연히 마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재능에 우쭐해서, 한때는 진심으로 음악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재능 따위는 없고, 있는 것은 단순한 자질? 자격뿐이었다. 그것을 이용해 '무얼 하고 싶다'는 부분이 완전히 빠져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 결과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복도를 걷고 있었다. 졸업연주회가 앞으로 한두 달 남짓 코앞까지 닥쳐왔는데도, 아직 파트너조차 정하지 못했다.
오늘은 휴일이지만, 연습하러 온 학생들을 위해 교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나 역시 초조하기는 다른 사람 못지 않았기에, 연습을 구실로 학교 안을 어정거리고 있다.

바로 근처에서 노랫소리 비슷한 것이 들려와 멈춰서자, 복도 앞 모퉁이에서 느닷없이 사람이 나타났다.

-꺄악!

누군가가 -아마도 여자아이가- 나와 부딪히고는 작게 비명을 질렀다. 난 여자치고는 큰 체격인지라 그런 귀여운 소리는 못 내고, 그냥 무슨 일인가 했을 뿐이다. 가슴 언저리에 달린 교복 단추가 얼굴에 맞았는지, 그 여학생은 이마를 손으로 누르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어깨에서 흘러떨어지려던 포르텔 케이스를 다시 걸치며 우선 사과를 한다.

-아, 미안해.
-으으… 네에. 아, 아뇨. 저야말로 죄송해요.


그녀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예의바른 아이구나. 게다가 몸집도 되게 작다. 지금 보니 교복도 입지 않았다. 여기 학생이 아닐지도 모른다.

-저기… 너 여기 학생?
-아니… 아, 아녜요. 올 봄부터 여기 다니게 됐어요….


내 교복을 보고 선배라는 걸 알아챈 모양이다. 점점 더 긴장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서,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그렇게 긴장 안 해도 돼요. 일단은 축하해. 난 올해 졸업이니까 만나진 못하겠지만, 넌 열심히 하렴.
-…언니는?


생각하고 있던 게 불쑥 입으로 나와버렸다. 이 이상 말해 봐야 푸념이나 늘어놓게 될 뿐인지라, 나는 웃으며 얼버무렸다. 그리고 간단한 궁금증을 물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좀 전에 노래 부르고 있었지?
-아… 아니오.


뭐가 부끄러운지,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부정한다. 그렇게 아래를 향하고 있으니 키 차이도 있고 해서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노래… 좋아해?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아하하, 긴장하지 말라니까.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좋은 거야.


그럼, 정말로 좋은 거다.

-근데 이런 데서 뭘 하고 있어?
-아… 아버지를 따라왔어요. 볼일이 있으니 어디 가서 잠시 놀고 있으라고 하셔서.


어쩐지 이 아이한테 흥미가 생겼나 보다. 처음 보는 애한테 싹싹하게 말을 걸고 있다니. 말상대가 있었으면 했던 것도 있고.

-그럼 아직 시간 있어?
-네? 네에. 앞으로 한 시간 정도.
-그럼 언니랑 잠깐 같이 다닐래? 안내 정도라면 해 줄게.


무슨 변덕일까. 앞으로 이 학원에 다니게 될 후배에게 이곳저곳 안내를 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좀 전에 잠깐 들었던 아름다운 소프라노의 노랫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시한번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목소리였다. 하지만 내성적으로 보이는 그녀는 노래를 불러 줄 것 같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쯤은 억지로 끌다시피 손을 잡았다.

-네? 아….
-이름은?
-리… 리세… 라고 해요.
-그러니? 잘 부탁해. 난 라센. 라센 나트.



【2】
그로부터 30분 정도 학교 안을 돌아다녔을까. 리세의 딱딱하던 태도도 이젠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일단은 이걸로 끝.
-하아… 정말 넓으네요. 게다가 시설도 잘 돼 있고.


감탄한 듯이 그렇게 말하고, 리세는 마지막으로 돌아본 연습실을 바라보았다. 좁은 공간임에도 업라이트가 아닌 그랜드피아노를 설치해 놓은 걸 보면 이 학원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헤아려 본 적은 없지만, 복도에 늘어선 연습실이 모두 똑같이 되어 있으니까, 교내에 있는 피아노의 수는 엄청날 것이다.

-아직 시간 있지?
-네. 30분 정도.
-그러면, 잠깐 들르고 싶은 데가 있거든.
-들르고 싶은 곳?
-어딜까~


솔직히 얘기하면 거절당할 것 같아서 말끝을 흐린다. 오늘은 학원 자체는 휴일이어도, 연습실을 사용하고 있는 학생들은 꽤 많이 있다. 나도 그 중의 하나이지만 오늘은 연습할 기분이 아니다.
어쨌든, 학생이 아닌 사람을 연습실에 들이는 건 좀 찜찜하다. 앞으로 다니게 될 신입생이니까, 순찰을 다니던 선생에게 들켜도 크게 혼이 나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만일을 위해 다른 장소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내가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리세를 옛날 학교건물로 데려왔다.
수많은 귀족들의 기부금으로 새 교사가 지어진 이후, 이곳은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부지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철거는 되지 않았고, 지금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오래되긴 했어도 튼튼히 지어진 건물이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고, 교실에 설치된 피아노는 조율과의 실습에 쓰이고 있어서 연습하기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단지 새 건물에도 연습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가끔씩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찾는 경우도 있다.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저… 여기는?
-옛 교사야. 아까 있던 데가 새 교사고. 거긴 다른 학생도 많으니까 좀 그렇잖아.
-다른 사람이 많으면 안 좋은 일이 있나요?
-음~ 약간?


여기까지 왔으면 돌아가겠다는 말은 안 하겠지.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가끔씩 사용하고 있는 음악실로 향했다.

-저… 저기, 여기서 뭘 하나요?
-잠깐 포르텔을 치고 싶어져서. 졸업연주회라는 거 알아?
-네, 조금은.
-사실은 나, 아직 파트너를 못 정해서 연습상대를 찾고 있거든. 괜찮다면 한 곡만이라도 안 될까?
-그게….
-여긴 아무도 안 오니까 괜찮아.


뭐가 걱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라면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도 않는다. 그러면 내성적인 리세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서 말을 꺼냈는데….

-저… 정말 노래해도 괜찮은가요?
-물론이지.


주저주저 묻는 리세에게 자신있게 대답한다. 그러자 그녀는, 방금까지와는 전혀 딴판인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노래를 좋아하는구나. 나도 이런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면 조금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와서 이런 말을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무슨 곡으로 할래? 이래뵈도 3년 동안 여기서 연습했단 말이지. 유명한 곡은 웬만큼 칠 수 있어.
-으음… 그러면.


그녀가 택한 것은 여기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곡이었다.

-응, 좋아. 그 곡 좋아하니?
-네.


기쁜 표정으로 대답하고, 리세는 피아노 앞에 서서 발성연습을 시작했다. 뭔가 본격적으로 가고 있는 느낌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기쁘기도 하다. 아직 여기 학생도 아닌 그녀의 노래실력이 어떨까 하고 신경이 쓰였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자존심도 발동했다. 서둘러 포르텔을 준비하고 몇 차례 시험삼아 쳐 보았다.

다음 순간, 그녀의 맑은 목소리가 음악실 안에 울려퍼졌다.

자그마한 몸집에 걸맞지 않게 성량도 풍부하고 목소리도 좋았다. 타고났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까. 지금까지 들어 보았던 어느 학생의 소리와도 달랐다. 그것은 마치 프로 연주회에서나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같았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 얼굴을 쳐다보고 있자, 리세는 이쪽의 시선을 알아채고는 느닷없이 사과를 했다.

-아… 죄송해요. 갑자기 큰 소리를 내서.
-아니, 전혀 문제없어. 어차피 밖에는 들리지도 않으니까. 조금 놀랐을 뿐이야… 좋은 의미로.
-…좋은 의미요?
-응. 목소리가 참 좋구나 해서. 혹시 노래 부른 지 오래 됐니?
-…네, 조금. 어렸을 때부터.
-…헤에. 난 제대로 연습 시작한 건 여기 온 다음부터라 그리 잘 치는 편이 아니야.


마치 그 목소리에 압도당한 것처럼,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난 변명을 하고 있었다. 살짝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그래도 이것만은 확실하다. 나보다 이 아이가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

-…그, 그럼 시작해 볼까.
-네에.


계속 조용히 있다간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른다. 그게 무서워서, 어서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럼 간다.
-네.


불안을 느끼며 포르텔 건반에 손가락을 얹는다. 노래를 권한 것을 살짝 후회하면서, 곡의 첫머리를 치기 시작했다.


【3】
리세의 마지막 노랫소리가 음악실 벽으로 빨려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포르텔의 여운도 사라졌다. 정말 훌륭한 노래였다. 그것이 연주가 끝난 지금의 솔직한 감상이다.
그리고 나 역시 멋진 연주였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연주가 끝나면 틀림없이 비참한 기분에 빠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실력의 차이를 느꼈고, 실제로 함께 연주를 하고 있어도 그 차이는 역력했다.
하지만… 그 노랫소리는 나의 포르텔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연주가 틀렸을 때에도, 리세는 살며시 미소지으며 내 실수를 지워버리려는 듯이 더욱 더 크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눈을 마주하며 호흡을 맞추고 있으면 그녀와 하나가 된 느낌마저 들었다. 내가 음악을 시작한 이래 단 몇 차례밖에 맛보지 못한 음과의 일체감. 그것을, 아직 학원에 다니지도 않는 작은 소녀와 함께 나눌 수 있었다니.
그리고 나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 자신의 감성에도 놀라고 있었다. 어쩌다 우연히 이곳에 다니게 되었고, 음악에 대한 정열 따윈 전혀 없었는데.
그런 나조차도 지금은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연주하면서 내내 우리들의 음악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주가 끝난 지금은 얼마간의 아쉬움과, 그 이상의 충실감을 느끼고 있다.

-…저기, 어떻게 됐나요? 제 노래… 이상했어요?

순간, 겸손치레로 그렇게 말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진지하고, 농담을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렇게 노래를 잘 불러 놓고 어째서?'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 즉시 생각을 고쳤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부르고, 피오바 음악학원까지 올 실력이 있는 아이다. 집에서도 상당히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겠지. 마냥 들뜬 기분으로 입학한 나와는 모든 면에서 다르다.

-아니, 하나도 안 이상해. 아주 멋졌어.
-저, 정말요?
-응.


내가 진심이라는 것은 말투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리세는 기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볼을 붉혔다. 내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확 끌어안고 싶을 만큼 귀여운 미소였다.

-언니 연주도 멋졌어요. 역시 3학년은 대단해요.

예의상 하는 말이란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진심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걸 알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방금 한 연주만 들어 본다면 나도 아직은 쓸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리세의 노래 덕분이긴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이것도 그녀의 인품이겠지.

-저기… 그럼 한 곡 더 할까요?
-좋지.


나도 신이 나서 대답했다. 이렇게 음악이 즐겁다고 느꼈던 게 얼마 만일까. 어렸을 적? 학원에 들어오고 나서는 전혀 없었던가?
어쨌거나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나는 다시 포르텔을 향해 앉아서, 리세가 알고 있을 만한 곡을 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그녀는 곡을 알고 있었는지,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4】
정신을 차려 보니 약속한 1시간을 조금 넘기고 말았다. 5분 전에는 끝내자고 생각해 뒀는데, 그것도 잊어버릴 만큼 신나게 연주를 했나 보다.

-앗! 리세, 시간, 시간!
-네? …아.


그녀도 벽시계를 확인하고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엄격한 건 음악에 대해서만이 아닌 모양이다.

-저, 저어… 감사합니다.
-됐으니까 서둘러. 잊어버린 거 없니?
-괜찮아요.


내 짐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포르텔은 그냥 놔둔 채 서둘러 옛 교사의 문 앞까지 함께 달렸다.

-여기까지 바래다 주시면 됐어요. 오늘은 정말 감사합니다.
-인사 안 해도 돼. 나야말로 감사하고 싶은 걸.
-라센 언니는… 이제 졸업이지요?
-응. 내년엔 여기에 없을 거야.
-…그런가요.


시간이 없다면서, 그녀는 아쉬운 표정으로 계속 날 바라보았다.

-시간은?
-약간 정도라면 괜찮아요.
-그럼 다행이지만. 오늘은 정말 고맙다. 이것저것 고민하고 있었는데 기분이 후련해졌어.
-그런가요?
-응. 앞으로 3년 동안 열심히 해라.
-네. 노력할게요.


그 말을 들으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틀림없이 나도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 거야.
'언제까지고 그 얼굴이 흐려지지 않기를' 하고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고 있으려니, 리세는 나와 그 뒤에 있는 옛 교사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니?
-다른 사람은 여기 안 오나요?
-응, 거의 안 와. 호기심 많은 녀석들이 가끔? 난 연습하기 싫을 때 이따금씩. 생각해 보면 꽤 마음에 들던 곳이야.


감상에 젖어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그녀가 마지막으로 물어보았다.

-여기, 아무 때나 와도 괜찮은가요?
-응, 학생이 되고 나면. 혼자 있고 싶을 때라든지, 리세도 가끔 써 보면 좋을 거야.
-…언젠가 다시 함께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구나.
-약속해 주실래요?
-…응.


이루어지지 않을 약속을 한 다음, 우리들은 헤어졌다.

음악실로 돌아와 포르텔을 케이스에 정리하다가, 마음을 고쳐 다시 포르텔을 조립했다. 가방 속에서 직접 쓴 악보를 꺼내 첫 소절을 연주해 본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이 곡을 함께 해 봐도 좋았을 텐데. 아니, 부끄러우니까 역시 안 하길 잘했어.

놀랄 만큼 기분이 후련했다. 리세같은 인재가 나중에 이 나라의 음악계를 짊어지고 나가겠지.
아마도 난, 그녀와 함께 연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방금 전에 악의없이 했던 약속은 못 지킬 거야. 그만큼 프로의 세계는 엄격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을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리세는 재능도 있고, 틀림없이 잘할 수 있을 거야.
살짝 고개를 들었던 질투심도, 그녀의 웃음을 떠올리자 금세 사라져 버렸다.

나는 멈춰 있던 손을 움직여 포르텔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졸업연주회만큼은 열심히 해 봐야겠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여기서 지낸 시간을, 오늘의 일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만은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게.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