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서, 내 인생 최대의 싸움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공통점도 있어서 우린 곧 뜻이 맞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밀한 사이로 발전했다. 학생시절엔 브레인 프로젝트의 기초가 되는 연구를 공동으로 발표했지. 그러한 인연도 있고 해서, 나는 그녀가 군에 팔아넘긴 브레인 프로젝트에 초빙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변해버렸어…. 나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 계획의 위험성… 그리고 타치바나 레이카의 위험한 사상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그 여자 생각은 옛날과 달라지지 않았어. 그녀는 당시부터 세뇌칩에 대한 구상을 곧잘 이야기해 주었거든. 토오루 : ……. 쿠웡 : 이윽고, 나와 주임기술자 몇 명은 사사건건 레이카와 대립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녀는 그것을 지독한 배신행위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레이카는 우리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파멸시켰다. 토오루 : 파멸? 쿠웡 : 그녀가 구상하고 있던 추악한 세뇌 프로세스… 나와 동료들은 그 프로세스의 최초의 희생자가 되었다. 불완전한 프로세스 때문에 동료들은 모두, 최종적으로는 발광하거나 죽음을 맞이했지… 내가 세뇌를 극복하고, 너희들을 데리고 도망칠 수 있었던 건 정말 기적이었어. 바첼러 : 세뇌를 극복…? 쿠웡 : 레이카의 세뇌기술은 아직 불완전했다… 거기에 어떤 사건이 없었다면, 도저히 세뇌상태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었겠지만. 토오루 : 설마, 사건이란 게…? 쿠웡 : 그렇다. 렌… 죽었어야 할 렌과 넷 공간에서 마주쳐, 그녀의 부름으로 난 깨어날 수 있었지. 깨어난 후, 나는 데이터 베이스를 파괴한 다음 실험체들을 데리고 도망쳤다. 그리고 나서 네 아이와 함께 산장으로 숨어들었지… 하지만 그곳에도 금세 당국의 손길이 뻗쳐왔다. 량 : 우리들이 봤던 산장의 기억은 그 시절 일이었군…. 쿠웡 : 어쩔 수 없이 나는, 칩의 부작용이 심각했던 량과 겐하를 남기고, 나머지 둘을 시설에 맡긴 다음 도망쳤다. 야기사와 : 그리고 그것을 알아낸 게 나였지… 하지만 나도 쿠웡을 추적하는 동안에 타치바나 레이카의 음모를 알게 되었다. 일단, 찾아냈던 소우마를 당시 내 동료… 사사기리가 떠맡고, 사사기리는 그대로 군을 그만뒀다. 토오루 : 쯔키나 아버님이 대장님의 동료였습니까…? 몰랐군. 야기사와 : 그래. 나는 나머지 한 사람인 바첼러를 추적하다가 거기서 뼈아픈 보복을 당했지…. 바첼러 : 그 후로 나는 아저씨 부하들한테 쫓기면서 렌을 뒤쫓았던 거고…. 야기사와 : 같은 무렵, 렌은 별동대에게 추적당해 리바이아산을 눈뜨게 했다. 바첼러 : 그리고 그 엄청난 피해는 내 책임으로 돌려졌지. 토오루 : …그런데, 대장님 일행은 어째서 상층부에 숨기면서까지 저나 바첼러를 감싸주려 하셨던 겁니까? 야기사와 : …일단은 쿠웡과 같은 이유다. 세뇌칩이나 최종병기같은 것들을 레이카에게 넘기는 건, 미치광이에게 칼을 쥐어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으니까. 바첼러 : 정말로 그것뿐이야…? 야기사와 : 나머지는 개인적인 감상이지… 나한테는 너희들 또래의 생이별한 아이가 있었다. …쿠웡은 우리와 이야기를 나눈 후, 소대장실에 쾌활한 함성이 울려퍼진다. 야기사와 : 너희들 말이다… 조금쯤은 군율이란 걸…. 요오스케 : 자자, 중대장님… 승진 축하드리옵니다~! 무뚝뚝한 표정의 중대장에게 요오스케가 재빨리 잔을 권한다. 애초에 야기사와 대장이 무뚝뚝한 얼굴인 건 평소에도 늘 그런 일이다. 미노리 : 정말 축하드려요~ 야기사와 중대장님~! 야기사와 : 나 원 참… 이제 와서 승진 어쩌고 해도…. 리바이아산 사건으로 상층부의 인물이 싹 바뀐 탓인지, 우리 기지에도 도미노식으로 승진의 바람이 몰아쳤다. 그 영향으로 야기사와 소대장은 중대장으로 올라가고, 새로운 소대장으로는…. 카이라 : 하하하… 모두들 잘 부탁해. 아하하핫~ 요오스케 : 하아… 이제부턴 '카이라 소대장님'이라고 불러야 되는 건가…? 미노리 : 어찌됐든 상관없지만, 앞으로는 속옷차림으로 돌아다니거나 신참 대원을 유혹하는 건 삼가 주세요. 카이라 : 아하핫, 알고 있다니까… 맡겨 둬 맡겨 둬. 와하하하핫~~ 아야네 : …하나 더. 아무래도 좋은데, 어째서 식당 아줌마랑 민간인이 여기 있지? 쯔키나 : 누, 누가 아줌마라고… 실례잖아! 바첼러 : 그래그래. 가슴 좀 크다고 건방지게. 토오루 : 후우…. …여전히 우리 소대에는 '규율'이라는 문자는 없다. 완전히 느슨해진 분위기…. 그런 공기에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나는 도저히 같이 끼어들어 떠들 기분이 나지 않는다…. 량 : 그치만 카이라 소대장… 소대장이 되면 슈미크람으로 출격 못 하잖아. 카이라 : 에엣?! 거짓말! …싫어, 난 소대장이 돼도 슈미크람에서 안 내릴 거야! 야기사와 : ……너 말이다. 요오스케 : …나 참, 리바이아산 덕분에 터무니없는 소대장이 나오셨군. 쯔키나 : 자, 잠깐…! 요오스케가 리바이아산의 이름을 입에 담자마자 분위기가 싸악 가라앉고, 모두들 걱정스럽게 날 바라본다. 요오스케 : …미안 토오루… 나쁜 뜻은 없었어. 토오루 : …신경쓰지 마. 나도 언제까지고 지난 일에 매달려 있을 순 없지. 카이라 : 미안해 토오루… 진짜, 이 바보! 토오루 : 괜찮대도 그래… 정말…. 내가 신경쓰이는지, 술자리에 무거운 분위기가 감돈다… 이렇게 된 건 요오스케 책임이 아니다. 계속 그 일에 끌려다니고 있는 내 탓이다…. 토오루 :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지… 돌아왔을 땐 분위기 좀 띄워 줘. 미노리 : 토오루씨…. 나는 최대한 밝게 행동하며 대장실을 빠져나온다…. 토오루 : …렌…. …복도에 나오자마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신경쓰지 않는다니, 거짓말이다. 지금도 '리바이아산'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렌이 떠오르며 가슴이 아파온다. 가슴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생겨버린 느낌… 이 상처가 아물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려야 할까…? 바첼러 : 토오루…. 어느샌가 바첼러가 내 뒤에 서서 걱정스럽게 말을 건다. 토오루 : …왜 그래 바첼러? 바첼러 : 미안해 토오루… 나, 계속 너한테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어. 토오루 : …사과하다니, 뭘? 바첼러 : 내가 만든 수정 프로그램, 아무런 도움도 못 돼서…. 토오루 : ……. 저쪽 세계에서의 일을 떠올려 본다… 그 상황에서도 바첼러는, 렌의 버그를 수정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었다. 토오루 : 신경쓰지 마… 전부 끝난 일이야. 바첼러 : 그렇지만, 그 후로 토오루는 내내 침울해져 있고… 내가 렌한테 무언가 해 줬더라면…. 바첼러의 눈에는 커다란 눈물이 맺혀 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그녀를 향해 미소짓는다. 토오루 : 고마워… 나는 그런 상황에서 네가 렌을 생각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 바첼러 : 훌쩍… 그치만…. 토오루 : …괜찮으니까 모두가 있는 곳으로 가. 난 신경쓰지 말고. 나는 바첼러의 머리를 모자째로 움켜잡듯 어루만져 준다. 바첼러 : …응. 바첼러는 눈물을 숨기려는 듯 깊이 모자를 눌러쓰고, 그대로 소대장실로 뛰어간다…. 토오루 : …그래, 이젠 모두 끝난 일이야…. 술자리에 돌아갈 기분도 나지 않은 채, 어느샌가 내 발은 작전실로 향하고 있었다…. 토오루 : ……. 이 콘솔로 몇 번이나 넷에 뛰어들었던가. 몇 번이나 뉴로잭을 꽂았던가. …그런데 단 한 번의 전투 이후로, 내 마음은 안정과 평안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어째서? …난 괜찮아…. 렌은 말이지, 원래대로라면 나는 고개를 저으며, 끝없이 솟아오르는 회상을 중단한다… 이렇게 옛 추억에 빠져 있어 봐야 소용이 없다. 넌 '초원의 늑대'야. 토오루 : …좋아. 나는 그 사건 이후로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던 그곳에 가기로 결심한다. 렌과의 추억이 담긴 채팅방… 그곳을 마지막으로 한 번 찾은 다음, 과거와 결별하자…. …채팅방은 그때와 비교해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응… 경치도 좋아하지만, 정신을 늦추면 머릿속에 과거의 추억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을 만큼. 토오루 : …이제 다시는 이곳에 안 온다. 난 두번다시 렌을 생각하지 않아…. 나는 자신에게 들려주듯 중얼거리고는, 발길을 돌려 채팅방을 나서려 한다…. 토오루 : 엇차…! 발에 무언가가 걸려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 나는 발에 걸린 물건을 주워들고는, 무심코 한숨을 내쉬고 만다. 토오루 : …꽃목걸이…? 헤헷… 렌은 오빠랑 맺어졌는 걸. 그러니까…. 틀림없다. 이것은 렌과 맺어지고 나서 그녀가 만들어 준 꽃목걸이….토오루 : 젠장… 렌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참에…! 격한 감정에 사로잡혀 꽃목걸이를 꼭 쥐고, 그리고 나는 어떤 사실을 깨닫고서 멍해진다. 넷의 법칙하에서는 잔해가 남지 않는다… 꽃은 딴 순간에 소멸한다. 렌이 꽃목걸이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넷의 법칙을 왜곡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토오루 : 설마…?!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둘러보는 내 귀에, 들어 본 적이 있는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 : …쿠울… 새근…. 어딘가에서 들었던 편안한 숨결… 나는 풀을 가르며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간다. 달려가는 내 머릿속에 바첼러의 말이 떠오른다. 이 프로그램에는 네 뇌내칩의 코드도 섞여 있어. 가상의 초원을 비추는 햇살 속에서, 렌은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토오루 : …렌……. …넷의 저 끝에서
가상의 초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BALDR FORCE 렌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