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서, 내 인생 최대의 싸움은
가혹한 결말을 맞이했다.
싸움은 내 마음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치유하기 어려울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그런 상처도 시간과 함께 풍화하여
이윽고는 잊혀져 버릴 것이다….

리바이아산이 몰고 온 재해는
넷 역사에 남을 대참사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타치바나 레이카와
곤도우 장관의 음모는 만천하에 모두 밝혀져,
정치계에서는 전에 없었던 대혼란이 일어났다.

정변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세계는 다시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느낌이다.
V·S·S는 해체되고,
군 상층부도 치열한 생존투쟁 끝에 대부분이 교체되었다.

…하지만, 이 혼란이 가라앉았을 때
넷의 암흑시대가 끝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란 걸 알고는 있지만.

…다행히도, 리바이아산에 흡수되었던 동료들은 모두
'저쪽 세계'로부터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동료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타치바나 레이카와 겐하,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유우야를 비롯해 이미 불귀의 객이 되었던 사람들도
당연히 되살아나지 않았다….

그 싸움이 끝난 직후,
쿠웡과 대장은 우리들을 모아 놓고
지난 과거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쿠웡 : 원래, 타치바나 레이카와 알게 된 것은 학생때였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공통점도 있어서 우린 곧 뜻이 맞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밀한 사이로 발전했다.
학생시절엔 브레인 프로젝트의 기초가 되는 연구를 공동으로 발표했지. 그러한 인연도 있고 해서, 나는 그녀가 군에 팔아넘긴 브레인 프로젝트에 초빙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변해버렸어….
나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 계획의 위험성… 그리고 타치바나 레이카의 위험한 사상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그 여자 생각은 옛날과 달라지지 않았어. 그녀는 당시부터 세뇌칩에 대한 구상을 곧잘 이야기해 주었거든.
토오루 : …….
쿠웡 : 이윽고, 나와 주임기술자 몇 명은 사사건건 레이카와 대립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녀는 그것을 지독한 배신행위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레이카는 우리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파멸시켰다.
토오루 : 파멸?
쿠웡 : 그녀가 구상하고 있던 추악한 세뇌 프로세스… 나와 동료들은 그 프로세스의 최초의 희생자가 되었다.
불완전한 프로세스 때문에 동료들은 모두, 최종적으로는 발광하거나 죽음을 맞이했지… 내가 세뇌를 극복하고, 너희들을 데리고 도망칠 수 있었던 건 정말 기적이었어.
바첼러 : 세뇌를 극복…?
쿠웡 : 레이카의 세뇌기술은 아직 불완전했다… 거기에 어떤 사건이 없었다면, 도저히 세뇌상태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었겠지만.
토오루 : 설마, 사건이란 게…?
쿠웡 : 그렇다. 렌… 죽었어야 할 렌과 넷 공간에서 마주쳐, 그녀의 부름으로 난 깨어날 수 있었지.
깨어난 후, 나는 데이터 베이스를 파괴한 다음 실험체들을 데리고 도망쳤다. 그리고 나서 네 아이와 함께 산장으로 숨어들었지… 하지만 그곳에도 금세 당국의 손길이 뻗쳐왔다.
량 : 우리들이 봤던 산장의 기억은 그 시절 일이었군….
쿠웡 : 어쩔 수 없이 나는, 칩의 부작용이 심각했던 량과 겐하를 남기고, 나머지 둘을 시설에 맡긴 다음 도망쳤다.
야기사와 : 그리고 그것을 알아낸 게 나였지… 하지만 나도 쿠웡을 추적하는 동안에 타치바나 레이카의 음모를 알게 되었다.
일단, 찾아냈던 소우마를 당시 내 동료… 사사기리가 떠맡고, 사사기리는 그대로 군을 그만뒀다.
토오루 : 쯔키나 아버님이 대장님의 동료였습니까…? 몰랐군.
야기사와 : 그래. 나는 나머지 한 사람인 바첼러를 추적하다가 거기서 뼈아픈 보복을 당했지….
바첼러 : 그 후로 나는 아저씨 부하들한테 쫓기면서 렌을 뒤쫓았던 거고….
야기사와 : 같은 무렵, 렌은 별동대에게 추적당해 리바이아산을 눈뜨게 했다.
바첼러 : 그리고 그 엄청난 피해는 내 책임으로 돌려졌지.
토오루 : …그런데, 대장님 일행은 어째서 상층부에 숨기면서까지 저나 바첼러를 감싸주려 하셨던 겁니까?
야기사와 : …일단은 쿠웡과 같은 이유다. 세뇌칩이나 최종병기같은 것들을 레이카에게 넘기는 건, 미치광이에게 칼을 쥐어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으니까.
바첼러 : 정말로 그것뿐이야…?
야기사와 : 나머지는 개인적인 감상이지… 나한테는 너희들 또래의 생이별한 아이가 있었다.

…쿠웡은 우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지하로 잠적해 버렸다.
테러리스트는 그만둔다고 했지만,
그 열혈한이 얌전히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국, 브레인 프로젝트 이전의
우리들의 기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우린 그 사실을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리바이이산 안에서 체험했던 '일어나지 않았던 만남'.
…모두들 말은 하지 않지만,
그 '존재하지 않는 일들'의 기억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은 채,
깨끗이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변함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
…미노리, 아야네, 카이라, 요오스케…
제1소대 동료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직장에 복귀했다.

미노리는 변함없이 친절하고, 변함없이 어딘가 덜렁거린다.
한때는 제대를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결국 군에 남기로 선택했다.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한 건 미노리뿐만은 아니었지만….

아야네는 이전보다 훨씬 붙임성이 좋아졌다.
무리를 하지 않게 된 만큼 실적은 떨어졌지만,
우리들은 그런 변화를 환영하고 있다.

카이라는 변함없이 속옷차림으로 어슬렁대며,
나쁜 남자버릇도 변함이 없다….
그래도 이전에 비해 어딘가 차분해진 느낌이 든다.
적어도 날 유혹하는 일은 없어졌다….
가끔씩, 호색벽이 수그러들고 있는 요오스케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우리 모두에 대해,
그 사건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 이후로 아키라와는 만나지 못했다.
가끔씩, 나는 리바이아산 안에서
아키라가 보여주었던 마지막 웃음을 떠올리며
한없이 쓸쓸한 기분에 잠길 때가 있다.
…아니, 아키라가 그렇게 간단히 죽어버릴 리가 없다.
그녀석 또한 '초원의 늑대'…
그것도 보통내기가 아닌 것이다.

쯔키나는 V·S·S가 해체된 후, 군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이것도 V·S·S 사원 재활정책 덕분이다.
다른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쯔키나도 그 사건의 영향으로
넷에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엘리트 슈미크람 파일럿에서 식당 아가씨로…
남들이 보기에는 엄청난 비극이지만
본인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바첼러와 량은 당국의 보호를 받으며 느긋하게 지내고 있다.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기에 그렇다는 거지만.
두 사람은 죽이 잘 맞는지,
최근에는 언제나 둘이서 함께 행동하고 있다.
엄청난 연산능력, 엄청난 기억력을 가진 최강 콤비의 탄생이다.
…무엇보다도, 실제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나이에 어울리는(약간 멍청한) 여자아이로밖에는 안 보이지만.
이야기를 듣기로는, 바첼러는 세뇌 피해자들을 위한
뇌내칩 복구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던가….
그렇다면 쯔키나가 구원받을 수 있는 날도 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렌은 이제 없다….

나는 사건의 뒤처리가 일단락된 후,
제대 신청서를 남기고 기지를 떠났다.



13장 융합 -HARMONY-


…지금 나는, 그 산장에서 은둔자처럼
혼자서 조용히 살고 있다.
이렇게 조용한 산 속에서 홀로 지내고 있으면,
리바이아산과의 싸움이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여겨진다.

토오루 : 녀석들, 잘 지내고 있을까….
량 : 당연히 잘 지내지… 토오루, 역시나 여기 틀어박혀 있었구나?
토오루 : 으왓! 너희들 어떻게 여길…?!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다섯 여자들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만다….

바첼러 :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구라도 알지. 어째서 혼자 뛰쳐나간 거야?
아야네 : 괴로운 건 알지만… 혼자 있으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 거야.
미노리 : 그래요… 괜찮다면 다시 군으로 돌아오지 않겠어요? 대장님도 자리를 그대로 남겨두셨고.
쯔키나 : 군대가 싫다면 토오루 정도는 내가 돌봐줄 수 있는데.
바첼러 : 식당 아줌마가 잘도 말하는군.
쯔키나 : 누, 누가 식당 아줌마라고…?!
아야네 : 잠깐 너희들, 조용히 해!

아야네의 호통에 모두 입을 다문다… 그 모습을 보고 무심결에 웃음이 배어나온다.

토오루 : …고마워. 날 걱정해서 찾아와 줬구나.
미노리 : 그, 그런… 고맙다니….
량 : 응, 우린 그저 한가해서….
토오루 : 고마워. 정말 기뻐… 하지만 지금은 혼자 있게 해 주지 않을래…?
쯔키나 : 으응… 그치만….
아야네 : …할 수 없군. 혼자 있게 해 주자….
바첼러 : 그래… 토오루, 우린 근처에서 놀고 있을 테니까, 마음 내키면….
토오루 : 고마워… 그렇게 할게.

여자들은 몇 번이고 날 돌아보며, 바로 아래에 있는 강가를 향해 걸어간다.

토오루 : 미안해… 모두들….

가만히 혼잣말을 하자, 머릿속에서 그녀가 속삭인다….

…오빤 좋은 친구들을 뒀구나.

아아, 그래….
정말이지 나한테는 과분한 친구들이야.

하지만 이래도 괜찮아?
저 사람들, 진심으로 오빠를 걱정하는데.


…알고 있어….
그래도 난 렌만 있으면 충분해….

여자들을 바라보며, 나는 머릿속의 '렌'과 평소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리바이아산이 붕괴한 후, 렌은 나의 뇌내칩을 통해 내 의식에 들어와, 반쯤 융합한 형태로 살아남아 있었다.
어째서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뇌 또한 메모리의 일종에 불과하다는 증거일지도, 아니면 내 뇌내칩이 특수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렌을 잃은 충격으로 내 정신이 어딘가 이상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단 하나 확실한 건, '렌'이라는 개성이
오빠 의식 속에 살아남아 있다는 것뿐이야.
오빠의 의식과 융합해서….

…융합된 순간부터, 나의 개성과 렌의 개성이 조금씩 화합하고 있는 것을 나는 느낀다.
그 때문인지, 렌의 목소리가 나날이 약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언젠가 렌은 오빠 안으로
완전히 스며들어 버릴지도 몰라….


그게 싫어서 이런 산 속으로 온 게 아닌가….
그래서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은둔생활을 계속한 것이 아닌가….

'렌'이라는 존재가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가슴이 꽉 메인다.

아니야… 렌은 사라지지 않아.
단지 오빠 안에 잠들어 있을 뿐.


잠들어…?

그래….
'렌'은 오빠 안에서 계속 살아있어….
오빠라면 느낄 수 있을 거야.

미소지으며 '렌'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간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고 작아져 간다.

잘 자…
오빠….
정말 좋아해.

슬퍼할 필요는 없다… '렌'은 계속 거기서 잠들어 있을 뿐이니까.

……렌…….

그런데도 나는 넘쳐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다….

미노리 : …토오루씨…?

갑작스런 목소리에 얼굴을 들자, 모두가 나를 멀찍이 둘러싸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량 : 어, 어떻게 된 거야 토오루…?
토오루 : …….
쯔키나 : 저기… 도시락 만들어 왔는데… 같이 안 먹을래?

일순간, 나는 거절하려고 말을 꺼내려다, 그대로 입을 다물고 만다….

아야네 : …토오루.

걱정스러운 얼굴… 다섯 여성들이 저마다 각자 날 다정하게 감싸주고 있다.
…하지만 내 슬픔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계속 슬퍼하고 있을 수는 없다….


토오루 : 그래… 마침 배고프던 참인데. 잘 먹을게.

내 대답을 듣고, 모두의 얼굴에 안심한 듯한 웃음이 떠오른다.

바첼러 : 그럼 강가에서 먹자! 거기선 다 함께 앉을 수 있으니까.
토오루 : 아아, 그래….

나는 모두와 함께 발밑을 조심하며 강가로 내려간다.

량 : 괜찮아 토오루. 무슨 일이 있든지 우리가 함께니까.

그리고 내일은 산을 내려가서, 틀림없이 다시 거리로 돌아가겠지… 그 다음의 일은 지금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
…살짝 눈을 감으면, 어둠 가운데서 렌의 기척을 몸 안으로부터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마치 몸 안쪽에서 안겨 있는 듯한 감각… 그래, 렌은 나와 융합하여, 분명히 내 안에 살아있다….


맞아, 렌은 언제나 오빠랑 함께야.
결국 이해해 줬구나….


…마지막으로 한 번 렌이 미소짓고,
그리고는 내 안으로 가라앉아 갔다….

토오루 : 잘 자, 렌…….

렌에게 작별을 고하고,
나는 다시 현실의 인생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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