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오해 -MISTRIAL-


잠결에 느껴지는 커피향과 빵 굽는 냄새. 이불을 두른 채 기분좋은 향기를 음미하는 아침….
어느샌가 빵 냄새는 코를 찌르는 타는내로 바뀌고, 방안은 매운 연기로 가득하다. 모닝커피라며 바첼러가 건네준 잔에는 잔뜩 졸아든 시커먼 액체가 가득하고, 식탁에 올라온 것은 새카맣게 탄 숯덩어리들.
휴대단말로 상황을 물어보는 소대장에게 '일단은 순조롭다'며 보고 완료. 그리고 다시 입씨름이 이어진다. 손수 아침을 만들고, 가슴에 풍선까지 집어넣어서 여자답게 보이고 싶은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토오루 : 히카루는 노력하지 않아도 원래 여자잖아. 무리해서 연기할 필요 없어.

오늘도 둘만의 시간이 계속된다… 무엇을 할까 궁리하고 있을 때, 휴대단말 화면에 나타난 소대장이 긴급소집을 알리며 귀환명령을 내린다.

졸린 표정으로 작전실에 집결해 있는 대원들. 생체소자 분야의 최대 메이커이자 뇌내칩의 주요 공급원이기도 한 I·V·S사의 칩 제조공장이 테러리스트의 습격을 받았다. 넷과 현실세계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던 대규모의 습격을 받아 이미 공장 중추는 그들에게 제압당한 상태.
모니터에서는 이전에 보았던 쿠웡이라는 남자가 범행성명을 발표하고 있었다. '뇌내칩의 블랙박스'에 관해 대중들에게 사실을 밝히라는 요구와 함께, 그들은 '공장의 핵융합로 + 10만 명의 주거인'이라는 카드를 움켜쥐고 있다. 섣부른 대응은 최악의 사태를 낳을 수도 있다.
1개사단 규모의 기동부대가 I·V·S 건물 주변에 전개하여 대기중. 1소대의 이번 임무는 구조체에 몰입하여, V·S·S와 함께 테러리스트의 넷 부대를 몰아내는 것이다.
다른 루트에서는 볼 수
없는 그녀의 편안한 미소.

아야네 : …안녕.
토오루 : 여어, 아야네… 안녕.
아야네 : 꼬마 애인은 어때?
토오루 : 아아, 뭐 그런대로 잘… 이봐, 아야네?!
아야네 : 오늘은 나하고 짝이야… 그애가 나오면 방해하지 않게 잘 설명해 줘.

미소에다 농담까지 곁들이며 옆 콘솔에 앉는 아야네. 뉴로잭을 꽂자마자 동료들의 개인회선이 쇄도한다. 바첼러와 함께 밤을 지낸 일이 소대 동료들에게 알려져, 주인공에겐 '로○콘'의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중대한 비밀도 막중한 임무도 1소대 내에서는 그저 농담거리일 뿐.

구조체로 전송된 주인공에게, '타 부대의 슈미크람이 합류를 요청중'이라는 미노리의 교신이 들어온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눈에 익은 기체. 군의 식별번호를 위조해 들어온 바첼러이다. 약속을 어기고 구조체까지 따라온 것을 꾸짖지만, 곁에서 도와주고 싶다는 그녀의 말엔 거절할 도리가 없다. 아야네는 마침 잘됐다며, 개인별로 움직이자고 제안하고는 먼저 달려가 버린다.

바첼러와 함께 적을 무찌르며 전진하고 있을 때, 핵융합로에서 아야네가 겐하와 교전중이라는 급박한 통신이 날아든다. 서둘러 달려가지만 이미 그녀의 기체는 파괴당한 후였다.
바첼러를 밖에 남겨두고 핵융합로에 진입하자, 제어시설에 침투한 바이러스가 제어기구를 침식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제어시설의 콘트롤은 겐하에게 넘어가 있으며, 핵융합로가 폭주하면 수분 이내에 폭발로 이어지게 된다는 기술담당자의 설명이 뒤따른다.
꼼짝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앞에 두고 겐하가 아야네와 미노리에게 추잡한 욕설을 퍼붓고 있을 때, 바첼러가 달려와서 기폭장치를 가동시키고 도망치는 겐하를 뒤쫓아간다. 일단은 바이러스를 파괴해 핵융합로의 폭주를 막는 것이 최우선.

시간제한 붙은 미션은 정신건강을
위해 난이도 NORMAL 추천.
■ 1분 30초 이내에 적을 전멸시키면 포스크래쉬 '메가마인(メガマイン)' 입수.

바이러스가 전부 파괴되고, 제어 프로그램이 복구되어 폭주는 저지되었다. 한숨을 돌리며 바첼러 쪽을 돌아보자

바첼러 : 이자식… 이렇게 힘든 상대는 처음이야!
전투예측 프로그램도, 내 예측도 전부 빗나가고 있어… 어째서? 나보다 이녀석이 계산능력이 높다는 건가?!

겐하 : 헤헤헷… 들린다 바첼러. 超천재, '좌뇌(左腦)의 제왕'이라고? 거기에 대해 이 몸은 超미치광이… 말하자면 '우뇌의 제왕'이지.
머리로 생각하고 있는 한 넌 나한테 이기지 못해… 어쨌든 난 아무것도 생각을 안 하고 있으니까. 우하하하하핫!
바첼러 : 시끄럿! 입닥쳐…!!
겐하 : 아아아아아…! 이건 하늘의 계시야… 난 네 천적이지. 널 없애기 위해 지상에 내려온 파과의 천사!
바첼러 : 닥쳐엇!!!!

전투중에도 계속 추잡한 말을 늘어놓는 겐하.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인공은 싸움에 끼어든다.

전자체도 남기지 않고 폭발하여 사라지는 겐하의 기체. 동생의 원수를 갚게 된 아야네가 고맙다는 말을 전해오고, 뒤이어 귀환하라는 대장의 지시가 떨어진다. 바첼러에게도 이탈하라고 말을 걸지만… 그녀의 시선이 못박힌 벽의 한쪽 구석에는 노랑과 검정으로 칠해진 육중한 문이 가로막고 있다. 그것이 넷 공간에서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 공성방벽으로 둘러싸인 '위험지대'.
민간시설에 위험지대가 존재한다면, 저 문 너머에는 군사기밀에 맞먹는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문제가 되기 전에 귀환하려 하지만 이미 문은 열려 있었고, 호기심에 찬 바첼러가 그 안으로 발을 내딛는다.
문 안쪽에는 넓직한 홀이 있고, 그 중앙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토오루 : …이게 뭐지?
바첼러 : 난 알아… 인공지능이야. AI의 전자체, 말하자면 '아바타(화신)'이란 거지.
토오루 : 어째서 AI가 이런 곳에?
바첼러 : 글쎄… 그건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이봐, 넌 거기서 뭘 하고 있어?

아바타 : 나는 사고통제기구의 말단관리자… I·V·S 사원들의 사고패턴을 끊임없이 조사 및 개입하는 중입니다.
토오루 : 이녀석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바첼러 : 잠깐 기다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을래?
아바타 : 난 그것에 대해 말하도록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상위기구로부터 분열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이 회화가 종료된 후 지령을 수행합니다.
바첼러 : 자, 잠깐 기다려! 듣고 싶은 게 더 있단 말이야!

조형물은 일순간에 미립자로 분열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토오루 :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바첼러 : 내, 내가 아니야… 멋대로 AI가……!
미노리 : 토, 토오루씨, 큰일났어요…!!
토오루 : 왜 그래 미노리?
미노리 : 이, 이걸…!!

I·V·S로부터 보내온 화상에는 흰자위를 까뒤집은 남자가 스크린에 얼굴을 밀어붙이고 있다. 아까 핵융합로에서 교신했던 I·V·S의 기술담당자이다.

미노리 : 이 사람만이 아녜요… 주요 기술자들이 모두 한꺼번에 쓰러져서….
토오루 :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바첼러 : …내, 내가 아니야… 난 AI한테 말을 걸었을 뿐이라고…!
토오루 : 진정해 히카루… 난 그걸….
바첼러 : 믿어 줘… 제발… 내가 아니라니까…!!

바첼러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심상치 않은 그녀의 반응. 피해상황을 보고하는 미노리 역시 반쯤 혼란상태에 빠져 있다. 순식간에 펼쳐진 지옥같은 광경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AI가 분열한 것과 직원들의 사망과는 무슨 관계가…?

바첼러가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달려나간다. 뒤쫓으려던 주인공의 귀에, V·S·S가 그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는 소대장의 말이 들려온다. 그렇다고 협력관계인 V·S·S와 교전을 벌일 수는 없는 일. 바첼러의 행동은 군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녀가 주인공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대장을 비롯한 1소대 전원은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지시에 따라 이탈하는 주인공.

작전실에는 미노리 혼자 남아있다. 대장은 어딘가로 급히 외출했고, 주인공에게는 이곳에 남아 대기하라는 명령.

토오루 : 미노리,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미노리 : 정식 보고에는 '전투중 혼란을 틈타 바첼러가 I·V·S의 구조체에 잠입, 접속상태이던 사원들을 대량살상하고 귀중한 데이터를 탈취하여 도주'한 것으로 돼 있어요.
토오루 : 말도 안돼… 바첼러가 어떻게 그런 짓을 했다는 거야?!
미노리 : 소규모이고 한정적인 DOS 공격이라고….
토오루 : …그렇다면 우리들도 죽지 않은 게 이상하잖아? 계속 구조체 안에 있었는데!
미노리 : 저도 DOS 공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접속해 있지 않은 사원들에게도 피해가 발생했고….
토오루 : …어쩐지 안 좋은 예감이 드는데….

바첼러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녀에게 죄를 덮어씌운 것인가?
아지트에서 들은 바첼러의 말을 생각해 보면, 그녀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주인공은 미노리의 제지를 뿌리치고 아지트로 달려간다.

그녀는 전기도 연결하지 않은 채 아지트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일단은 안심하면서도,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당황스럽기만 한데….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채 자신을 믿어달라며 소리치는 바첼러.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냐는 물음에는 그녀 역시 고개를 젓는다. 설명 가능한 가설이 하나 있다며 바첼러가 입을 여는 순간….
아지트 문이 열리며 쯔키나가 들어온다. 안심한 것도 잠시, 평소의 그녀와는 다른 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마치 가면을 쓴 것과도 같은 무표정한 얼굴과 차가운 시선.

이번에도 세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
쯔키나 : …토오루, 임무 수고했어… 이제부턴 우리들 V·S·S가 그애를 돌볼 거야.
토오루 : 뭐, 뭐야? 쯔키나, 그거 도대체…?!
바첼러 : 토오루… 설마 내가 여기 있는 거… V·S·S에 알렸어?
토오루 : 아, 아냐… 쯔키나, 이건 뭐 하는 짓이야?!
쯔키나 : 토오루는 널 붙잡기 위해 도움을 준 것…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야.
바첼러 : ……배신했구나 토오루!!

그녀의 절규와 동시에 V·S·S의 보안요원들이 밖에서 몰려들어와 바첼러를 붙잡는다.

바첼러 : 토오루… 어째서… 날 좋아한다고 했던 거 거짓말이었어?!
토오루 : 아, 아냐… 이자식들, 히카루를 풀어줘!

바첼러에게 손을 뻗지만 권총 개머리판에 얻어맞고 쓰러지는 주인공.

쯔키나 : (손을 뻗어 일으키며)토오루… 일을 방해하면 안돼.
토오루 : …쯔키나, 이건 대체 무슨 속셈이야?!
쯔키나 : 이해해 줘… 난 토오루를 범죄자로 만들 수 없어. 그러니까….
으윽… 그, 그러니까… 미안, 이해해 줘!


머리를 감싸쥐며 바닥에 주저앉고 마는 쯔키나. 퀭하게 부릅뜬 눈은 허공의 한 점을 바라보고 있다.

토오루 : …쯔키나?!
??? : 임무 수고했어… 소꿉친구를 너무 괴롭히면 곤란해.
만나서 반가워.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겠지? 소우마 토오루군.
토오루 : …당신은….
레이카 : 소우마군… 알고 있겠지만, 그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라고. 더 이상 감싸다간 너도 죄를 추궁당하게 될 거야.
토오루 : 바첼러는 범인이 아니야… 범인은 따로 있어!
…설마… 당신들이…?!
레이카 : 후훗… 상상력이 매우 풍부한데? 소우마군.
너도 기지까지 함께 가 줘야겠어… 걱정하지 마. 분위기 파악하고 잘 처신하면 나쁘게는 안 할 테니.

총구를 겨누고 위협하는 데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두 손을 올리고 아지트들 나서자 밖에는 V·S·S의 장갑차량들이 줄지어 있고, 총을 든 보안요원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그리고 주변에 가득 몰려든 구경꾼들.
이젠 누구도 믿을 수 없다며 훌쩍이는 바첼러를 보안요원들이 질질 끌고 차량으로 데려간다. 오해를 풀 수만 있다면 총에 맞아도 좋다… 그런 생각으로 돌아서는 순간….
발치에 빈 깡통처럼 생긴 물건이 굴러온다. 깡통은 짙은 연기를 내뿜기 시작하고, 주위 시야가 일순간 차단된다. 이어지는 총성과 군중들의 비명… 요란한 소음이 밤거리를 뒤흔든다.
바첼러가 있던 방향을 더듬어 찾고 있을 때,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에 언뜻 연기가 걷히고, 도망치는 소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토오루 : 기다려… 기다려 줘, 히카루!!
??? : 기다리게!
토오루 : 놔… 이자식…!!
쿠웡 : 자, 날 따라오게나. 어서!
토오루 : …놔앗!!

일순간 주저한 다음, 나는 손을 뿌리치고 달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이 습격은 페타오의 짓인 모양이다.
…하지만 어째서? V·S·S에 페타오, 그들은 왜 이렇게까지 바첼러를 뒤쫓고 있는 걸까?


토오루 : …제길, 어디로 간 거야!

걷혀가는 연기 속에서 나는 바첼러를 찾아 계속 달린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토오루 : 으윽…!!

갑자기 배에 무언가가 내밀어지고, 머릿속에 스파크가 인다.
…스턴건?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쓰러졌다.


쯔키나 : …미안해, 토오루….

의식을 잃기 직전, 쯔키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뺨은 거리의 불빛을 반사하는 눈물로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