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강마 -DESCEND-


오빠… 오빠…!
아… 안돼… 쫓아오지 마…!
싫어어어!! 오빠, 도와줘…!!

렌의 이름을 부르며 땀투성이가 되어 침대에서 뛰쳐일어나는 주인공. 바깥은 아직 동트기 전의 보라빛이다.
렌은 겁에 질려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기억나는 꿈의 내용은 그것뿐. 불길한 예감에 이끌려, 주인공은 뉴로잭을 꽂고 채팅방으로 몰입한다.

현실의 시간대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는 채팅방. 가상의 초원 한켠에서 렌은 풀밭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나쁜 꿈이라도 꾸는지, 이마에서 땀을 흘리며 도와달라는 말을 되뇌고 있다. 어깨를 흔들어 깨우자, 그녀는 눈을 뜨고 주인공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품에 뛰어들어 매달린다. 잠시 동안 끌어안고 있자 진정된 기미를 보이는 렌.

토오루 : 그런데 왜 여기서 자고 있었어? 잘 때는 현실로 돌아가지 않으면 몸에 해롭다고.
렌 : 그치만… 밤엔 언제나 외로운 걸….
여기 있으면 오빠가 와 주지 않을까 해서….

토오루 : 렌은 응석받이구나….
무서운 꿈이라니, 어떤 꿈을 꿨는데?
렌 : 응… 오빠가 어디론지 가 버리는 꿈….
토오루 : …….
렌 : 오빠… 오빠는 어디 가거나 안 하는 거지?
토오루 : 그래, 어디에도 안 갈 테니까 안심해.
렌 : …오빠.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짧은 동안에, 렌은 나를 완전히 오빠처럼 따르게 되었다.
혹시 내가 없어진다면 렌은 과연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렌은 나를 따르고 있다.


렌 : 약속이야… 아무 데도 가지 마… 오빠.

그리고, 나도 렌과 함께 있으면 묘하게 편안한 기분이 든다… 어딘가 그리운 따뜻한 느낌.

토오루 : 아아, 약속할게… 그러니까 오늘은 이만 현실로 돌아가 쉬어.
렌 : ……응.

렌은 조용히 머리를 끄덕이고는, 가까스로 내 몸에서 떨어져… 바람에 머리칼을 나부끼며 먼 눈으로 초원을 둘러본다.

렌 : 나 있지, 여기가 정말 좋아.
토오루 : 그러니? 여긴 나름대로 괜찮은 풍경을 만들어 놨으니까.
렌 : 응… 경치도 좋아하지만, 여기가 정말로 좋은 건 이유가 하나 더 있어.
토오루 : 어떤 이유?
렌 : 헤헷… 비밀이야.

어째서인지 렌이 부끄러운 듯한 웃음을 떠올린다… 그 웃음이 지금 내게는 소중하게 느껴진다.
설사 동료들 말처럼 렌이 유령이나 환상일지라도, 그런 건 상관없다. 이 미소만 있으면 나는 계속 따뜻한 마음으로 있을 수 있다….


토오루 : 그럼 난 이만 돌아갈게.
렌 : 응, 오빠 또 만나.

작별인사를 나누고, 나는 현실로 이탈했다.

아침부터 이어지는 슈미크람 모의훈련. 이번 상대는 카이라.

■ 완승을 거두면 포스크래쉬 '콘택트 봄γ(コンタクトボムγ)' 입수.

전투가 끝나고 카이라가 먼저 이탈한다. 뒤이어 이탈하려는 순간, 외부로부터 개인회선을 요구하는 통신이 연결된다. 출격때마다 변경되는 슈미크람의 개인회선 호출번호를 알아낸다는 것은 보통 솜씨로는 불가능한 일. 그렇다면 상대는….
예상대로 해커시절 동료였던 바첼러.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은 W&D사를 해킹한 이후로 처음이다. 바첼러는 자신을 따돌린 덕분에 유우야가 죽었다고 비아냥대며, 주인공의 실력을 알고 싶다면서 모의전투를 청한다. 도발임을 뻔히 알지만 그런 식의 말투는 잠자코 받아넘기기 힘들다. 바첼러가 넷에 모습을 나타내고, 동시에 모든 외부회선이 차단된다.

이 정도 상대는 가볍게 밟아 주자.
■ 승패에 관계없이 스토리가 진행된다. 마음 편히 상대하자.

토오루 : 내 실력을 알고 싶다고? 대체 목적이 뭐야?
바첼러 : 비밀. 그런데 너, 요즘에 묘한 애랑 같이 있다며?
토오루 : 너 혹시… 렌에 관해서 알고 있는 거냐?!
바첼러 : 킥킥… 글쎄? 또 기회가 되면 찾아올게.(이탈한다)

바첼러의 이탈과 동시에 외부회선이 회복되고, 걱정스럽게 물어보는 미노리에게 일단은 '어딘가의 해커'라고 얼버무린다. 지금 자세한 이야기를 해 봐야 이로울 것은 없다.

현실세계로 귀환하자마자, 한잔 걸치러 가자는 동료들을 뿌리치고 주인공은 방으로 달려가 채팅방에 접속한다. 변함없이 환한 얼굴로 맞이하는 렌. 바첼러에 관해 물어보자 모른다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렌이나 바첼러에 관한 개인적인 일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토오루 : 있잖아… 렌은 어디서 접속해?
렌 : …그건….
토오루 : 그럼 가족은? 아직 학생이야?
렌 : …….
토오루 : 하아… 렌은 아무것도 대답해 주질 않는구나….
렌 : …미안….
미안해 오빠… 렌도 좀 더 이것저것 이야기해 보고 싶어.
그치만 말해버리면 미움받을까봐 무서워….

토오루 : …그런….
렌 : 아냐, 이야기를 하면 날 평범한 눈으로 보지 않을 거야….

고개숙인 그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어리기 시작한다. 그렇게까지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렌에게는 있는 걸까?

토오루 : 렌… 도대체…?
렌 : 하지만 말 안 해도 미움받겠지…?
나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
오빠… 렌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토오루 : …알았어 렌… 더 말하지 않아도 돼.
렌 : …그래도….
토오루 : (머리에 손을 얹으며)렌은 바보구나….
그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돼. 힘들면 무리해서 말하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
…말할 수 있게 되면 그때 말해 주겠다고 약속하면 돼.
렌 : 그래도…! 그렇게 되면 언제 말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토오루 : 괜찮아. 느긋하게 기다릴게… 그러니까, 언젠간 얘기해 준다고 약속하는 거지?
렌 : 으응, 약속할게! 약속해 오빠….
토오루 : (머리를 쓰다듬으며)나도 그때까지 무사히 살아있으려면 무모한 짓은 하지 말아야겠군.
렌 : 훌쩍… 오빠….(품에 기댄다)
??? : 안돼… 난 그렇게 느긋하겐 기다릴 수 없어.
토오루 : 누, 누구냣?!
??? : 나야. 한창 좋은 때인데 방해 좀 해야겠군.
토오루 : 바첼러?! 이번엔 또 무슨 용건이지?
바첼러 : 오늘은 네가 아니라 그쪽 여자애한테 볼일이 있어.
렌 : !!
바첼러 : 오랜만이야… 렌이라고 했지? 널 계속 찾아다녔어.
렌 : …….
토오루 : 렌, 바첼러를 알아?
렌 : (고개를 젓는다)
토오루 : 렌은 널 모른다잖아!
바첼러 : 너무하군… 이래봬도 렌을 위해서 이것저것 해 줬는데.
뭐 됐어. 전부터 너한테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든.

렌 : 시, 싫어어…!
토오루 : 멈춰, 더 이상 가까이 오면 나도 가만 안 있는다.
바첼러 : 어째서 네가 방해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토오루 : 렌이 겁을 먹고 있잖아!

다시 격돌하는 두 슈미크람. 쉽사리 결말이 나지 않자, 바첼러는 초조해하며 바이러스를 불러낸다.

다구리의 참맛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토오루 : 크윽… 비겁한 녀석!!
바첼러 : 비겁한 수를 써서 미안하지만… 지금은 수단방법을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

■ 끝없이 몰려드는 바첼러의 바이러스. 이벤트성 전투이므로 패배해도 진행에 지장은 없다. 쓰러질 때까지 20기 이상 격파했다면 포스크래쉬 '무환강난무(武幻剛亂舞)' 획득.

슈미크람의 내구력이 한계에 달하고… 전자체 상태로 바닥에 내팽개쳐진 주인공을, 비명을 지르며 달려온 렌이 안아 일으킨다. 눈앞에는 바첼러의 슈미크람, 그 뒤로 늘어선 수많은 바이러스들은 포구를 이쪽으로 조준하고 있다.

토오루 : 으윽… 그만해 바첼러…!
바첼러 : 목숨을 뺏으려는 건 아니야… 렌 너한테 천천히 얘기를 듣고 싶을 뿐이지.
렌 : …아….

렌이 손을 꽉 잡는다. 얼굴은 공포에 질린 채 얼어붙고, 두 눈은 초점이 맞지 않는다….

토오루 : 렌…?
렌 : 안돼… 안돼…!
바첼러 : …렌…?

희미하게 몸이 떨리며,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나온다. 어깨를 잡고 흔들어 보아도 그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토오루 : 렌, 정신차려! …바첼러, 이건 대체 뭐지?!
바첼러 : 토오루, 렌한테 진정하라고 말해 줘! 난 정말로 이야기만 듣고 싶었다니까!!
렌 : 안돼… 싫어… 이젠 싫어어어어어!!!!

반쯤 광란상태에 빠진 렌은 주인공의 손을 떨쳐내고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그 비명소리에 호응하듯, 짐승이 울부짖는 둔탁한 포효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토오루 : …지금 그건 뭐지…?!
바첼러 : …설마… 또 그게 오는 건가…?

여지껏 들어 본 적이 없는 바첼러의 초조한 목소리. 이유를 묻기 위해 얼굴을 들자….
구조체의 벽면에 검고 둥근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시시각각 입체감을 더해간다. 검은 그림자에 몇 개인가 불빛이 들어오고, 가장 강렬한 빛이 마치 눈동자처럼 이쪽을 노려본다… 저주파와 고주파가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이 정점에 달하자, 눈과 같은 광채가 번쩍이며 굉음이 공간에 울려퍼진다.

토오루 : 뭐야… 바첼러, 이건 도대체 뭐야?!
바첼러 : 아, 악마야… 넷 공간의 악마…!!

작열하는 렌 루트가
서서히 그 막을….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검은 구체. 넷 공간에 존재하는 이상 초자연적인 존재일 리는 없다… 그런데도 이성을 넘어선 본능적인 공포가 덮쳐온다. 저 두려운 존재에게서 빨리 도망치라고 비명을 질러대면서.
불협화음이 합쳐지면서 포효와도 같은 소리를 내지르고, 어서 도망치라고 외치며 바첼러가 구체의 앞을 막아선다. 굳어진 채 움직이지 않는 렌을 안고 도망치는 주인공.
폭발음에 뒤를 돌아보자, 바첼러의 바이러스들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차례차례 폭발을 일으키고 있다. 뒤이어 무수한 빛의 화살이 바첼러를 향해 쏟아지고… 놀라운 테크닉으로 첫 공격은 피해냈지만, 구체의 공격은 계속 이어진다.
바첼러의 비명과 함께 슈미크람이 소멸하고 그 자리에 나타난 전자체. 모자가 벗겨져 긴 머리칼을 흩날리는 소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토오루 : 바첼러… 저녀석 여자애였단 말인가…?!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 바첼러의 전자체를 뭉개버리려는 듯이 검은 구체가 다가온다. 그만두라고 외치는 주인공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 렌이 품 안에서 작게 신음한다. 그와 동시에 구체가 움직임을 멈추고… 검은 구체를 향해 달려가다 쓰러진 렌은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외친다.

렌 : 아, 안돼… 그런 짓 하면 안돼…!!

그녀의 명령에 따르듯이 검은 구체는 모습을 감추고, 채팅방은 다시 원래의 고요함을 되찾는다.

토오루 : 지금 그건 대체 뭐야…?
렌 : …….
토오루 : 렌, 지금 그게 너랑 무슨 관계가 있니?
렌 : …미, 미안….
토오루 : 울지 말고… 그건 대체 뭐야?
렌 : …흑… 으아아아앙…!!!!

렌은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며 초원을 내달려서는… 막을 틈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대로 멍하니 서 있을 때 주머니의 휴대단말에서 들려오는 호출음.

미노리 : 토오루씨… 어떻게 된 건가요? 식사도 거르고 한밤중까지 몰입해 있다니….
토오루 : 아아, 문제가 좀 생겨서….

설명할 말을 생각하며 초원을 둘러보자, 좀 떨어진 곳에는 바첼러의 전자체가 여전히 기절상태로 쓰러져 있다.

토오루 : 미노리, 미안하지만 역탐지를 부탁해. 부상자가 있어.
미노리 : 부상자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요?
토오루 : 그건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미노리에게 지시를 하면서, 나는 지금 일어났던 일을 떠올려 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가는 해답은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