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괴멸 -LEVIATHAN-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꿈 속에서, 나는 침대에 누운 여자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소녀 : …오빠.

소녀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자그마한 손을 꼬옥 쥔다…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게 되고 만다.

조각조각 흩어진 기억의 단편들.
소녀 : 있잖아 오빠, 언제쯤 되면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토오루 : 얼마 안 남았어. 선생님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거든. 이제 곧 우리들을 자유롭게 해 준다고.
소녀 : 정말?! 그거 정말이야?
토오루 : 그럼, 정말이지….

거짓말이었다… 소녀에게 힘을 주기 위한 악의없는 거짓말. 하지만 기쁜 듯이 미소짓는 얼굴을 보며, 내 가슴은 꽉 조이듯 아파온다….

소녀 : 빨리 나갔으면 좋겠어… 그럼 오빠랑 같이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거지?
토오루 : 아아, 그래….
소녀 : 있지 오빠, 여기서 나가면 가고 싶은 데가 있어.
토오루 : 가고 싶은 곳?
소녀 : 응… 어디라도 좋으니까, 햇님이 비치는 곳에 가고 싶어.

그녀의 마음은 아프도록 잘 알고 있다. 이곳에 오고 나서, 우리들은 단 한 번도 햇빛을 본 적이 없다….

토오루 : 알았어… 같이 소풍가자… 약속할게.
소녀 : 응… 약속이야.

작은 손가락을 걸고 우리들은 약속을 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선생님들이 들어온다.

선생 : 자아, 테스트 시간이야.

그 말만을 남기고, 선생님들은 소녀를 데려가려 한다… 나는 황급히 선생님의 가운 소맷자락을 움켜쥔다.

토오루 : 선생님, 동생은 몸이….
선생 : 괜찮아. 동생 몸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잘 알고 있으니까… 방해하지 말거라.
토오루 : …그래도….

불길한 예감에 떨고 있는 내게, 그녀는 격려하듯 미소를 지어 준다.

소녀 : 괜찮아… 걱정하지 마 오빠. 꼭 다시 돌아올 테니까.
.
.
.
옅은 잠에서 깨어나, 아직 잠이 덜 깬 머리로 나는 생각한다. 뭘까, 그리운 기분이 들긴 하지만, 딱히 짐작이 가는 기억은 없다.

토오루 : '오빠'라….

수면부족으로 두통이 닥쳐온다… 렌과 헤어지고 나서 매일 밤 채팅방에 몰입해 봤지만, 렌은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검은 구체는 몇 번이고 넷 공간에 출현하여, 수많은 희생자를 남기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검은 구체에게는 '리바이아산'이라는 코드네임이 정식으로 부여되었다….


수직이착륙기의 폭음이 생각을 중단시킨다. 밖으로 나가 보자, 이전에 보았던 V·S·S의 이동식 모듈이 기지 내에 반입되어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V·S·S 직원들의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1소대 멤버들.
리바이아산 포획을 위해 V·S·S와 공동작전을 펼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높은 양반들에게 뭔가 계획이 있거나, 아무 생각도 없거나'라는 카이라의 비아냥섞인 혼잣말에

??? : 괜찮아. 계획은 있어.

어느샌가 등 뒤에서 나타낸 쯔키나. 무표정한 얼굴로 할 말이 있다며 주인공을 불러낸다. 그녀에게 이끌려 다다른 곳은….
줄지어 늘어선 V·S·S의 이동식 모듈 앞. '할 말'에 관해 묻자, 또다른 여성의 목소리가 설명을 자청하고 나선다. 본 기억이 있는 그 여성은 바로 V·S·S의 사장인 타치바나 레이카.
타치바나 사장은 묻고 싶은 말이 있다며 쯔키나를 물러가게 하고는, 대뜸 렌에 관해 물어온다. 렌이 나타날 만한 곳은 모두 감시의 눈길이 닿고 있으며, 채팅방에서의 대화 역시 사장에게 모두 전달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레이카 : 후후훗… 안심해. 그애는 나한테도 소중한 사람이니까.
토오루 : 소중하다니… 당신은 렌과 어떤 관계요?
레이카 :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현재 군과 V·S·S가 공동으로 리바이아산을 포획하려고 하는 건 알겠지? 렌은 그 포획작전에서 빠뜨릴 수 없는 요소야.
토오루 : 어째서…?
레이카 : 당신도 렌과 리바이아산 사이에 무언가 관계가 있는 건 알고 있지?
토오루 : 그 리바이아산이란 건 대체 뭡니까?
레이카 : 괜찮겠어? 얘기를 듣고 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데?
좋아. 원래는 최고레벨의 군사기밀이지만 특별히 가르쳐 주지.
리바이아산은 8년 전 발견된 정체불명의 거대 넷 병기… 개발자도 목적도 불명이야.
토오루 : 정체불명의 거대 넷 병기….
레이카 : 그래… 그런데 그 리바이아산이, 마치 렌이라는 아이의 정신상태에 호응하듯이 움직이고 있어.
토오루 : 어째서…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기라도?
레이카 : 글쎄…?
토오루 : '글쎄'라니?!
레이카 : 우리들도 몰라… 그건 본인한테 묻는 게 가장 빠르지 않을까?
토오루 : 그래서 나한테 렌을 불러내라는 건가? 안됐지만 나도 렌의 행방은….
레이카 : 괜찮아. 그애는 반드시 나타나게 돼 있어.
토오루 : …….
레이카 : 우리들은 렌과 이야기가 하고 싶을 뿐이야. 그러니까 당신은 렌을 설득하도록 협력해 주었으면 하는 거고.
토오루 : 설득이라니, 대체 무슨 설득을 하라고?
레이카 : 그것을 가르쳐 줄지 아닐지는 당신 대답에 달렸어. 협력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지.
후후훗… 안심해. 우리들도 렌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으니까. 자아, 어떻게 할래? 우리한테 협력하겠어?

1. 협력한다
2. 협력하지 않는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결과는 마찬가지. 사태를 경계하던 주인공은 쯔키나의 손에 의식을 잃고 만다.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속옷차림인 여왕님.
…어둠 속에서 기분좋은 감촉이 민감한 곳을 자극하고 있다. 눈을 뜨자 앞에는 쯔키나의 모습이… 온몸은 고정되어 있어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속옷차림의 타치바나 사장이 요사스러운 미소를 흘리며 눈앞에 나타난다.
미안하다는 말만을 되풀이하는 쯔키나. 그녀의 뒷덜미에 꽂힌 뉴로잭은….
사장의 지시에 거부의사를 보이면서도 쯔키나의 몸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인다. 고통스러운 그녀의 표정은, 자신의 의사와 반하는 행동을 강요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토오루 : …네년, 쯔키나한테 무슨 짓을 했나?!
레이카 : 사사기리양은 α유니트… 언제 어느 때라도 내 명령에 거역할 수 없도록 조치를 해 놨지.
토오루 : 설마… 세뇌…?!

쯔키나가 손에 뉴로잭을 들고 다가온다. 실패해서는 안될 작전을 위해 주인공에게도 같은 조치를 해 놓겠다고 말하는 타치바나 사장.

레이카 : 사실 이런 급속한 세뇌처리는 위험하지만… 작전이 끝날 때까지 정신이 버텨 주기만 하면 되니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행위를 되풀이하는 쯔키나. 몇 번이고 찾아오는 절정 속에서, 의식이 아득히 멀어져 간다….


여기는…?
정신을 차리자, 나는 기지 복도를 비틀비틀 걷고 있었다.
난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을까… 생각해내려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 도저히 사고의 초점을 맞출 수 없다. 그리고 내 몸은 내 의사에 관계없이 멋대로 복도를 계속 걸어가고 있다….
그런가… 이건 꿈이다… 쿡쿡 쑤시는 머리로 나는 그런 결론을 내리고, 일이 되어가는 상황을 무감동하게 지켜보기로 한다.
이윽고 내 몸은 작전실에 도착해, 멋대로 개폐 스위치에 손을 뻗는다.


미노리 : 토오루씨, 어떻게 된 거죠? 안색이 나빠요.
카이라 : 토오루, 작전을 앞두고 격한 운동은 금물이야.

카이라와 미노리가 무언가 말을 걸지만 의미를 알 수 없다… 나는 내 콘솔에 앉는다.

아야네 : …괜찮아…?
…지난번엔 고맙다는 인사도 못 했네… 고마워.

토오루 : 지난번…?

아야네의 말을 듣고, 나는 테러리스트에게 능욕당할 뻔했던 그녀의 모습을 생각해낸다.

으윽… 토, 토오루!! 쏴!! 제발!!

아, 안돼… 나도… 이런 거….
토오루한테 이런 모습 보이기 싫은데….

슬픔과 분노가 되살아나고, 꿈에서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동시에 둔한 두통이 머리를 덮친다.

토오루 : …으윽!!
아야네 : 왜 그래 토오루?!
토오루 : …아니, 아무것도 아냐….

나는 콘솔에 몸을 맡기고, 심호흡을 되풀이하며 숨을 고른다.

몰입 위치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은 1소대. 열려진 문 저편에는 에어록처럼 몇 겹이나 되는 두터운 봉인이 줄지어 있다. 넷의 법칙 아래서는 파괴가 불가능할 정도의 엄청난 정보밀도를 가진 봉인.
주인공을 제외하고 전원 후퇴하라는 새 명령이 내려온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동료들이 이탈하고, 대신 V·S·S의 α유니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장의 지시에 따라 전자체로 이행한 주인공을 V·S·S의 슈미크람 부대가 둘러싼다.

레이카 : 자아 렌, 어서 나오렴. 네가 보고 있는 거 알아.
토오루 : …….
레이카 : …얼른 안 나오면 좋아하는 오빠가 어떻게 돼도 모른다?(아무 반응이 없다)
…어쩔 수 없군. 사사기리양, 토오루군을 조금 아프게 해 주도록.
쯔키나 : …Roger.
??? : 기다려!

반딧불과도 같은 빛이 공간의 한 곳에 응축하여 소녀의 모습을 만들고… 빛은 렌의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레이카 : 겨우 나타났구나… 렌.
렌 : …….
(앞으로 다가온다)…오빠.

레이카 : 오랜만이구나 렌… 날 기억하고 있니?
렌 : …….
오빠한테 무슨 짓을 했어?

레이카 : 걱정하지 않아도 돼. 대단한 일은 아니니까. 네가 도망치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할 필요가 없었지만….
오빠를 생각한다면 다신 도망치면 안된다?
렌 : ……응.
미안해 오빠… 나 때문에 이런….


렌의 손이 내 손을 꼬옥 잡는다.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이 손을 감싼다.
렌, 도망쳐라… 갑자기 이런 마음이 들끓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레이카 : 자아,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 없어… 괜찮아. 나쁘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렌 : …….

렌은 살며시 손을 놓는다. 놓고 싶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손은 움직이지 않는다….

레이카 : 사사기리양, 전자체 포획용 넷. 모드는 '기절'.
쯔키나 : Roger.

쯔키나의 기체에서 은빛 거미줄이 흩뿌려져 렌의 몸을 감싼다.
이대로는 안돼…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만, 금세 사고는 초점을 잃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게 된다.


레이카 : …수고했어. 이걸로 임무완료야.
곧 있으면 당신도 V·S·S로 이적수속을 밟아 주지. 렌을 길들이는데 편리할 테니까.

…이대로는 안된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그러나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구조체 내에 비상경보가 울리고, 페타오의 습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타치바나 사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산개명령을 내리면서, 쯔키나에게 렌을 봉쇄블록으로 옮기도록 명령한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V·S·S의 슈미크람들이 황급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어디선지 교전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혼란에, 나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른 채 전자체 상태 그대로, 싸움터가 되어버린 필드 위에 멍하니 서 있다….


토오루 : 도대체 난 어떻게 하면…?
??? : (개인회선으로)소우마 토오루군이지?

어디선가 보았던 그리운 얼굴… 하지만 그것이 누구인지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다….

??? : 자네가 타치바나 레이카에게 모종의 처치를 받은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렌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자네밖에는 없어.
토오루 : …렌? …처치?

멍하니 있는 내 눈앞에서, V·S·S의 슈미크람에 탄흔이 새겨지더니 섬광과 함께 소멸한다.
폭풍에 휘말려 내 전자체가 공중을 날고… 그대로 나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렌 : 오빠…!!

전자체 포획용 넷 안에서 렌이 비명을 지르며 빠져나가려 몸을 흔들지만, 그물은 렌을 놓아주지 않는다.

레이카 : 소용없어. 그 포획용 그물은 완벽하게 너와 동조하고 있지. 넷의 법칙을 일그러뜨리는 너라도 거기서 빠져나올 순 없어!
렌 : 오빠… 풀어줘! 제발!!
레이카 : 공연히 널 8년 동안이나 쫓아다닌 게 아니야.
자아, 사사기리양, 렌을 봉인해!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내 앞에서, 렌을 그물에 가둔 쯔키나의 기체가 거대한 봉인을 향해 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 : 들으라! 넌 완전히 세뇌당하지 않는다… 그것이 너의 진가, 그 의지력이야말로 너의 소양(素養)이다.
토오루 : 세뇌당하지 않는다고?
??? : 생각해내라… 아무도 널 미치게 할 수 없다. 네 자신이 그것을 바라지 않는 이상은….

이 말은 들은 기억이 있다… 그래, 그 말은….
.
.
.
나는 어느샌가 울고 있었다. 머리를 감싸고, 아이처럼 흐느껴 울고 있었다….

남자 : 어째서 울고 있지? 토오루군.
토오루 : 훌쩍… 생각나지 않아… 무언가 중요한 걸 잊어버렸는데… 생각해내려고 하면 머리가 이상해져….
남자 : …그런가….

나뭇잎새로 비치는 햇살 속에서, 남자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알 수 없는 따스한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남자 : …앞으로도 그런 상태가 몇 번이고 널 찾아올지 모른다….
그럴 때는 생각해내거라… 아무도 널 미치게 할 수 없어. 네 자신이 그것을 바라지 않는 이상은, 반드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 거다.
토오루 : …반드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어…?
.
.
.
나는 놀라며 정신이 든다… 이것은 내 잃어버린 기억, 유년기의 내 기억…?

토오루 : ……렌!!!!

反轉 -FLIP FLOP-

청각신호에 또렷하게 들려오는 메시지와 동시에, 베일에 싸여 있던 머릿속에서 안개가 빠른 속도로 걷혀 간다….
흥분제의 몇 배에 달하는 각성감, 뇌세포의 연결이 소리를 내며 재구성되고, 의식의 레벨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와…
다음 순간, 나는 소우마 토오루로 돌아와 있었다.


토오루 : …돌아왔다….

꿈에서 깨어난 기분으로 나는 전장을 둘러본다… 현실로부터 또다른 현실로 옮겨진 듯한 위화감… 제정신이면서 또다른 제정신으로 깨어난 당황스러움….

남자 : 자아, 싸워라! 자네에겐 그럴 힘이 있어!
토오루 : 쯔키나… 렌을 놓아줘!!
레이카 : 설마… 세뇌가 풀렸다는 건가?!

쯔키나를 추격하려는 내 앞을 V·S·S의 슈미크람이 가로막는다.

토오루 : 렌…!!
렌 : 오빠…!! 오빠아아…!!!!
토오루 : 제길… 방해하지 맛!!

소름이 돋을 만큼 기막힌 BGM 연출.
미노리 : 토오루씨, 어떻게 된 겁니까?!
토오루 : 지금 V·S·S 녀석들한테 공격받는 중이야!
미노리 : V·S·S라니?! 어째서?!
토오루 : 자세한 이야기를 할 틈이 없어! 녀석들 진짜로 날 죽일 생각이야!
젠장… 끝이 없군!!
카이라 : 토오루, 지원하러 왔어!
요오스케 : 이자식들, 우리 파트너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냐!
토오루 : …너희들…?
미노리 : 토오루씨,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요?! 군과 V·S·S, 테러리스트가 셋으로 나뉘어 교전중…! 명령계통도 엉망진창이고….
카이라 : 동료가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지!!

토오루 : 요오스케, 카이라! 미안해, 여기는 부탁한다!
요오스케 : Roger! 맡겨 둬.
카이라 : V·S·S의 슈미크람하고 한 번쯤은 싸워 보고 싶었어.

토오루 : (계속되는 적의 공격)크윽….
아야네 : V·S·S한테 표적이 되다니…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토오루 : 아야네….

아야네 : 여긴 나한테 맡겨. 뭔가 사정이 있는 거지?
토오루 : 미안…!!

다중 봉인은 무정하게도 굳게 문을 걸어잠그고 있었다….

토오루 : 이런… 늦어버린 건가?!
제길… 렌!!

나는 다중 봉인을 향해 모든 화력을 퍼부어 본다. 그러나 두터운 문에는 흠집 하나 생기지 않는다….

쯔키나 : 소용없어… 슈미크람 탑재병기 정도로는 이 문은 부수지 못해.

차가운 목소리가 회선 너머로 들려온다. 돌아보자, 쯔키나의 기체가 문 뒤에 서 있었다.

토오루 : 쯔키나, 이 문을 열어!
쯔키나 : …….

회선 너머로 쯔키나의 얼굴이 일순간 일그러지더니… 금세 냉정한 표정으로 되돌아가 조준을 나에게 맞춘다.

토오루 : 쯔키나?!
쯔키나 : 저항하지 마… 널 사로잡으라는 명령을 받았어.
토오루 : 그만둬 쯔키나. 너하고는 싸우고 싶지 않아… 부탁이니까 정신을 차려 줘.
쯔키나 : 나, 나라고 해서… 그러니까 부탁해. 얌전히 무장을 해제해 줘…!

일순, 쯔키나의 얼굴이 격정으로 일그러지지만, 곧바로 그 표정에서 감정이 빠져나간다.

쯔키나 : 토오루… 경고에 따르지 않으면….
토오루 : …젠장, 충격요법 말고는 없는 건가…!

전투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내 귀에 렌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온다.

오빠 도망쳐… 빨리!!!!

토오루 : 렌… 렌이니…?!
렌 : 됐으니까 어서…! 이젠 늦었어…!!

렌의 비명과 함께, 어딘가에서 들었던 기분나쁜 포효가 전장에 울린다.
갑자기 쯔키나의 기체가 전투를 중단하고, 내게서 등을 돌린 채 고속이동모드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나는 주저하며 포효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본다.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 기괴한 포효는 틀림없이… 리바이아산!!


미노리 : V·S·S의 부대가 일제히 이탈을 개시했습니다. 대체 이건…?!
토오루 : 미노리, 모두 후퇴하라고 해. 리바이아산이 또 온다!
미노리 : 예에… 그런데 어디에도 반응이…?!

미노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검은 구체가 전장에 모습을 나타낸다.

미노리 : 리바이아산 출현?!
토오루 : 젠장… 빨리 모두를 후퇴시켜!!(사격하며 도망친다)
역시 효과가 없는 건가…?!

이를 악무는 나를 향해, 리바이아산의 거대한 몸체로부터 빛의 비가 쏟아져내린다. 그 속에서 슈미크람의 내구력 게이지가 점점 감소한다.

요오스케 : 토오루, 도망쳐…!!

요오스케의 목소리와 함께, 다른 방향에서 섬광이 리바이아산에게 쏟아진다. 흘끗 보자, 동료들이 나를 감싸듯 버티고 서서 리바이아산에게 일제포화를 퍼붓고 있었다.

카이라 : 안돼… 탄이 본체에 닿지 않아! 마치 방어막같아!
토오루 : 무리하지 말고 물러서…!

리바이아산이 포효하고, 다시 빛의 비가 쏟아져… 그리고 눈앞이 새하얘진다. 데미지의 한계를 넘어선 슈미크람이 붕괴하고, 나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토오루 : 으윽…!!

격심한 통증을 참으며 눈을 뜨자, 칠흑의 구체가 눈앞에 닥쳐와 있다. 시야 한켠에서 부하 게이지가 옐로우 존에 돌입한다. 구체 주변에서는 지나치게 접근한 군 슈미크람이 차례차례 폭발을 일으키고, 빛덩어리 속에서 전자체로 모습을 바꾸어 간다.

전군에 긴급통보, 전군 퇴각… 반복한다….

사령부에서 보내는 통신이 노이즈에 섞여 귓전에 울린다. 나는 말을 듣지 않는 몸으로 구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바닥을 긴다….

요오스케 : 토오루…!
카이라 : 자아, 함께 도망치자!

기묘하게 일그러진 시야 속에서, 요오스케와 카이라의 기체가 날 주우려는 듯 접근한다.

토오루 : 바보들, 도망쳐…! 요오스케, 카이라!!
요오스케 : 으아아아아아아악!!!!
토오루 : 요오스케…!!
카이라 : 요오스케… 이, 이자식…!!

카이라의 기체가 탄착을 회피하며 일제사격을 개시한다… 그러나 탄은 구체에 닿지 않는다.

토오루 : 소용없어 카이라… 이녀석한테 우리 무기는 안 통해!
카이라 : 알고 있어! 아야네, 어서!

카이라의 절규와 함께 강철의 팔이 나를 끌어안는다. 이것은 아야네의 슈미크람….

토오루 : 아야네, 어째서…?!
아야네 : 계속 말하다가 혀 깨문다…!
카이라 : 빨리 도망쳐…! 부하 게이지가… 하… ㄴ… 계…!!
미노리 : 카, 카이라… 카이라씨가…!!
토오루 : 제길… 카이라까지!!
아야네 : …간다!

교신화면 건너편에서 아야네가 창백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고 있다….
다음 순간, 아야네의 슈미크람이 고속이동으로 질주하기 시작한다.


미노리 : 카이라씨와 요오스케씨가… 절단… 뇌파 정지….

흐느끼면서 미노리가 상황을 보고한다… 뒤돌아보자, 검은 구체의 그림자가 점점 작아져 간다.

토오루 : …빌어먹을, 어째서…!

눈물로 일그러진 시야 속에서, 내 눈이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한다.
카이라와 요오스케, 다른 군인들의 전자체가 슈미크람이 파괴된 지점에 망령과도 같이 서 있다.


토오루 : …그런… 뇌사한 게 아니고…?!

요오스케와 카이라가 걱정스러운 듯 이쪽을 돌아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전자체들은 빨려들듯 리바이아산에게 흡수되어 버린다.

토오루 : …저 괴물… 전자체를 먹고 있어…?!
아야네 : …저건 전자체가 아니야. 틀림없어….
토오루 : 그럼 저건 도대체….
아야네 : …….

그리고 우리들은 침묵에 잠긴다. 후방에 있는 구체는 이미 새끼손가락 끝만한 크기로 보인다.

아야네 : 여기까지 벗어나면 괜찮겠지….
토오루 : …에?
아야네 : DOS 공격 비슷한 저녀석의 무기는 가까이 있지 않으면 효과가 없는 것 같아.
토오루 : …아야네, 덕분에 살았어.
아야네 : 신경쓰지 마. 빚을 갚았을 뿐이니까.
너도 이런 데서 죽을 수는 없겠지…?

토오루 : …그래….

한숨을 내쉬는 내 귀에, 미노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노리 : 어서… 빨리 도망치세요! DOS 공격의 징후가…!!
토오루 : 뭐라고?!
미노리 : 이번엔 틀림없는 광역 DOS 공격입니다…! 구역을 관할하는 AI의 처리능력이 급격히 다운되고 있어요!!
아야네 : …그런!!

강철의 팔에 안겨 뒤를 돌아본다. 전장 한가운데에 솟아오른 검은 구체에서, 눈과도 같은 2개의 빛이 나를 노려보고… 구체 주위가 흐늘흐늘 기분나쁘게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미노리 : 이탈가능구역까지 300가상미터… 빨리!!

아야네의 기체가 갑자기 비틀거리며, 이상한 진동과 함께 속도를 떨어뜨린다.

아야네 : 이런 때에… 기동유니트가 오버히트?!
미노리 : 앞으로 100가상미터… 끝까지 달리세요!!

아야네의 기체가 죽음의 영역에서 벗어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달린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절망적일 정도로 느리다.

토오루 : 미노리, 뉴로잭을 뽑아! DOS 공격을 받으면 접속만 하고 있어도 위험해!!
미노리 : 전 서포트입니다… 두 사람에게 탈출할 기회가 있는 한 임무를 포기할 수는 없어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미노리는 우리들에게 미소지어 준다… 그러는 동안에도 기괴한 울림은 점점 그 음량을 높여 간다.
…그리고 아야네의 슈미크람이 완전히 정지한다….


미노리 : 앞으로 30가상미터… 무장을 해제하고 달리세요!!
토오루 : 틀렸어… 이미 늦었어! 미노리, 잭을 뽑아!!

등 뒤에서 죽음의 포효가 울려퍼지고, 충격파와도 같이 우리들을 향해 공간의 일그러짐이 닥쳐온다.
진짜 DOS 공격… 저 일그러진 공간에 붙잡히는 순간, 넷의 법칙은 과부하를 일으키고, 생명줄은 절단당한다.


아야네 : 미노리! 토오루가 이탈방해구역에서 벗어나면 강제이탈을 부탁해!
미노리 : Roger!!
토오루 : 너희들… 대체…?!
아야네 : 토오루… 타박상은 참으라고!

강철의 팔이 나를 움켜쥐고는, 이탈방해구역 밖으로 공처럼 내던진다.

토오루 : 아야네…!!

공간의 일그러짐이 해일처럼 아야네의 기체를 뭉개버리고, 다음 순간 나도 거기에 빨려들고 만다. 시차 게이지가 급속도로 가산되고, 검은 글자로 '절단'을 표시한다… 그 순간, 오감이 전부 정지한다.
…그리고 오감이 암흑 속으로 사라져 간다….


강 제 이 탈 -AB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