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轉 -FLIP FLOP- 나는 신음소리를 내며 콘솔에서 눈을 뜬다. 머리가 깨어질 듯이 아프고, 금방이라도 토해버릴 것처럼 속이 메슥거린다.토오루 : …살아남은 건가…? 손을 움직여 눈앞에 내밀어 본다… 분명히 '절단' 표시를 보았는데도 나는 아직 살아있다. 실버코드의 절단은 100% 사망을 의미… 그렇지 않다면 그 표시는 착각이었다는 건가? 아니, 나노초 단위의 차이로 나는 강제이탈되어 DOS 공격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토오루 : 그, 그것보다, 모두들…?
토오루 : 아야네…?! 어깨를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아야네의 상태 표시는 무정하게도 '뇌사'를 가리키고 있다…. 요오스케도 카이라도 콘솔에 가만히 누워있다. 머릿속에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 되살아난다. 토오루 : 전부…. 나는 허탈감에 사로잡혀 비틀비틀 작전실 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제1소대의 최후…. 토오루 : 그래… 미노리는?! 미노리 역시 눈을 치뜬 채 콘솔 위에 엎드려 있다… 목덜미에 꽂힌 뉴로잭을 보고, 나는 대장의 말을 기억해낸다. 전자체로 몰입중인 자는 물론, 토오루 : 미안, 미노리…. 나는 손을 뻗어 살며시 미노리의 눈을 감겨 준다… 눈을 감은 그녀는 마치 잠자는 듯한 모습이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온기가 슬프게 느껴진다. 토오루 : 이런 말도 안되는… 어째서 이런 일이…. 분노와 슬픔이 마음속을 채우고, 어느샌가 시야가 눈물로 뿌옇게 흐려진다… 격정으로 마비된 머릿속에 동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바로 얼마 전까지 함께 잔을 나누던 동료들을, 나는 한꺼번에 전부 다 잃어버린 것이다…. 토오루 : 제길… 빌어먹을, 젠장!!!! 나는 분노에 사로잡혀 몇 번이고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토오루 : …왜 이런 일이…. 지금의 내게는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게 된 사실은 있다. 타치바나 레이카, 그 여자가 렌과 리바이아산에 관계된 것은 분명하다. 동료들이 이렇게 된 책임의 일부는 틀림없이 그녀에게 있다. 이렇게 된 바에는,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타치바나 레이카가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파헤쳐 주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토오루 : 그래… 바첼러! 그녀석이라면 틀림없이 뭔가 알고 있을 거야. 눈물을 훔치며 일어서서, 콘솔로 바첼러의 소재를 조사해 본다. 다행히도 그녀가 있는 방의 소재는 금방 판명됐다. …적어도, 여기에 있어 봐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콘솔에 있는 동안은 생명유지장치가 몸을 지켜주고, 의료반도 금방 와 줄 것이다. 토오루 : 모두들… 원수는 갚아 줄 테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뒤돌아보고 동료들에게 작별을 고한 다음, 경보가 울려퍼지는 기지 통로로 달려나갔다. 8장 특수소자 -ILLEGAL CHIP- 바첼러가 갇혀있는 취조실을 향해 내달리는 주인공. 휴대단말로 문에 걸린 전자키를 해제하고 조명이 꺼진 방 안으로 들어선다. 구조로 보아 취조실에 붙은 감시실인 듯하다. 벽면의 큰 창문은 동정을 감시하기 위한 매직 미러가 틀림없다. 옆방에서 바첼러의 비명이 들려온다. 창을 통해 방을 들여다보자…. 의자에 묶여있는 바첼러와 그 앞에 서 있는 곤도우 장관의 모습. 소리치며 반항하는 바첼러를 무시한 채, 장관은 그녀를 희롱하기 시작한다. 1. 도우러 들어간다 2. 좀 더 상태를 본다 취조실로 뛰쳐들어가 장관의 뒤통수를 쳐 기절시키고, 주인공은 바첼러를 풀어준다. 그녀에게 옷을 입히기 위해 돌아선 순간 방으로 들어오는 또다른 사람의 모습. 주인공과 마찬가지 목적으로 취조실의 보안장치를 해제하고 달려온 야기사와 소대장이었다.
야기사와 : …아아, 알고 있다… 소우마 너만이라도 돌아와 줘서 다행이다. 어쨌든 지금은 여기서 도망쳐라. 뒤처리는 내가 하마. 토오루 : …대장님? 야기사와 : 떠들고 있을 시간이 없다. 얼른 바첼러를 데리고 가. (메모를 건네주며)일단은 거기 적힌 주소로 가라. 너희를 숨겨줄 사람이 있을 거다. 토오루 : 하지만…. 야기사와 : 서둘러라. 빨리 하지 않으면 일이 귀찮아진다. 토오루 : …Roger. 수십분 후, 슬럼가로 향하는 3등객차 안. 바첼러 : …왜 그랬어? 토오루 : 에? 바첼러 : 어째서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날 구하려고 했지? 토오루 : 말했잖아. 너한테 듣고 싶은 일이 있다고. 바첼러 : 듣고 싶은 일? 토오루 : 사실은….(동료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바첼러 : …8년 전하고 똑같구나. 토오루 : 8년 전이라니, DOS 공격 사건 말이야? 네가 용의자 취급을 받고 있다고…. 바첼러 : 내가 한 거 아니야. 토오루 : 네가 아니라면, 그 '리바이아산'이란 녀석이 진범이란 얘기야? 바첼러 : ……그래. 토오루 : 8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지? 렌도 거기에 얽혀 있어? 바첼러 : ……. 알았어. 너한테는 얘기해 줄게. 난 8년 전까지 시설에서 지냈어… 그 전 일은 기억도 못 하지만. 그러니까, 8년 전에 시설에서 탈주한 다음에, 난 내가 어디의 누군지 조사해 보려고 했어. 결국 단서가 될만한 정보는 하나밖에 못 찾았지. 내 머릿속에 삽입된 뇌내칩의 제조번호뿐. 토오루 : 뇌내칩의 제조번호? 바첼러 : 내 칩의 제조번호는 일반 규격이 아닌 특수번호였어. 토오루 : 그런 일이…. 모든 뇌내칩의 규격은 중립기관의 감시를 받아 일체의 부정이 없도록 관리되고 있다. 특수한 번호를 가진 칩이 존재할 리가 없다.
넷을 조사하면서, 나는 어떤 군 연구시설의 구조체까지 도달했지. 토오루 : 군 연구시설? 무슨 연구를 했는데? 바첼러 : 몰라… 그런데 거기서 난 이상한 걸 발견했어. 엄중한 봉인 저편에 전자체가 하나 봉인돼 있는 걸 봤지. 토오루 : 설마 그게…. 바첼러 : 응. 그 전자체가 렌이었어. 토오루 : 렌이 봉인돼 있었다… 그럼 렌을 풀어준 건? 바첼러 : 나야. 외로워서 친구가 되고 싶었거든… 호기심도 있었고. 그런데 렌은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풀려나자마자 날 놔두고 넷 공간을 헤매기 시작했어. 토오루 : 찾다니, 뭘? 바첼러 : 몰라… 하지만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는 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어. 추격대가 뒤쫓아오는 것도 상관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난 조마조마하면서 그 뒤를 따라다녔지…. 마지막으로 봤을 때 렌은 울고 있었어. 군 부대에 쫓기면서 울고 있었어…. 토오루 : 군 부대…? 바첼러 : 응. 렌 한 사람을 잡으려고 군 특수부대가 출동했어. 덕분에 날 뒤쫓던 그 아저씨네 부하들까지 와 버려서… 정신없는 난전이 됐고. 나도 렌을 돕고는 싶었지만 중과부적이라… 렌이 붙잡히려던 순간에 갑자기 그게 나타난 거야. 토오루 : '그거'라니, 설마…? 바첼러 : 그래… 리바이아산. 그애는 내가 외롭거나, 슬프거나… 바첼러 : 아마도 렌이나 리바이아산에 관한 일을 비밀로 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겠지. 난 타이밍 나쁘게 현장에서 얼쩡대고 있었고. 토오루 : 확실히… 폭주한 군 비밀병기가 DOS 공격을 했다는 게 밝혀지면 큰 소동일 테니. 바첼러 : …그 이후로 렌은 최근까지 계속 모습을 감추고 있었어. 나도 찾아봤지만 발견하지 못했어. 토오루 : 찾았다니, 8년 전의 누명을 벗으려고? 바첼러 : …아니야. 토오루 : 그럼 왜…? 바첼러 : 그앤 내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을지도 몰라. 렌하고 내 뇌내칩 제조번호는 같은 규격이거든. 토오루 : 뭐라고?! 빈민가의 무인역에 열차가 도착한다. 과거의 번영을 말해주듯 고층빌딩과 공업단지의 건물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환경도 효율도 무시한 채 증식을 계속한 끝에 버려진 거대한 폐허…. 역에 내린 두 사람을 낯선 사람들이 둘러싼다. 그들에게 이끌려 긴 지하도를 건너오자, 눈앞에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지하에 펼쳐진 돔 모양의 공간. 천정으로부터 인공조명이 원형의 홀을 비추고 있다. 지금 서 있는 곳은 그 홀을 감싸는 테라스 형태의 자리. 바첼러 :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어. 빈민가 지하에 옛날에 만든 거대한 핵 방공호가 있다는 이야기. 돔 바닥에는 주거지인 듯한 조잡한 건물들이 세워져 있고, 주민들의 초라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홀 벽에는 각종 구호와 반쯤 칠이 벗겨진 간판이 뒤섞여 있고, 그 중에서 글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핵방어 피난시설 : 레벨7」. ??? : 레벨7에 어서 오게. 자네들이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네. 활기찬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테라스를 따라 천천히 걸어오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동양계, 둥근 안경을 낀 얼굴은 온화한 지식인처럼 보이지만, 그 큰 체구로부터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이 풍기고 있었다. 이 얼굴과 목소리… 전투중에 말을 걸어왔던 그 사람이 틀림없다. 토오루 : 당신은…? ??? : 직접 얼굴을 맞대는 건 처음이지? 소우마 토오루군. 소개하지, 난 쿠웡이라고 하네. 토오루 : 쿠웡?! 당신이 페타오의 지도자였단 거요?! 쿠웡 :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난 자네들의 적이 아니니까. 야기사와에게서 자네들을 숨겨달라는 부탁을 받았지. 토오루 : …대장님한테? 쿠웡 : 그래… 애초에 부탁을 받지 않았어도 숨겨주었겠지만. 소우마군, 자네도 타치바나 레이카 때문에 영혼에 상처를 받았을 테지? 타치바나 레이카는 우리들의 숙적… 이 지하도시는 그 암여우로부터 도망쳐온 사람들이 모여든 곳이다.(걷기 시작한다) 토오루 : 도망쳐온 사람들? 쿠웡 : 그래. 우리들이 주장하는 바를 자네도 알고 있겠지? 바첼러 : 뇌내칩에 세뇌용 블랙박스가 존재한다는 거? 쿠웡 :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라네. 타치바나 레이카가 악인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뇌내칩의 조작에 관해서는 순순히 믿기가 어렵다. 하지만 전에 당했던 세뇌의 경험도 있고, 바첼러의 특수한 뇌내칩을 생각해 보면 단순한 망상으로 듣고 넘기기도 어려운 것도 사실. 쿠웡 : 지금 당장은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까운 시일 내에 자네들도 알게 되겠지. (걸어가며)어서 오게. 자네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어. 거리 한구석, 수많은 사람들이 길바닥에 누워있다. 목에는 전부 뉴로잭을 꽂은 채. 리바이아산의 공격으로 뇌사상태에 빠진 것이다. 지나쳐 가던 도중,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 소스라쳐 놀라는 주인공. 토오루 : …아키라?! 쿠웡 : …그러고 보니 자네 친구였군. 그에게서 자네 이야기를 자주 들었네. 토오루 : 어째서 아키라가 테러리스트로… 이녀석도 리바이아산의 공격을 받은 거요? 쿠웡 : 아아, 그는 귀중한 동지였지.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뇌 활동은 정지한 그대로일세. 바첼러 : …토오루…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토오루 : 아아, 괜찮아… 쿠웡, 보여주고 싶다는 게 아키라는 아니겠지요? 안내받아 도착한 곳은 구시대에 지어진 작전실. 브라운관 형식의 모니터가 각종 상황을 표시하고 있다. 본 기억이 있는 비쩍 마른 남자가 그곳에 있다가, 주인공을 보고는 군인이 왔다며 화를 낸다. 쿠웡이 자신의 손님이라며 말리지만 남자는 듣지 않고 칼을 꺼내든다. 쿠웡 : 그만둬! 량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겐하 : 량이라고…? 이녀석들이 량을 어떻게 해 줄 수 있다는 거야?! 쿠웡 : 그래, 틀림없다. 날 믿어라, 겐하. 겐하 : (칼을 거두며)쳇… 네녀석들, 실패했다간 두번다시 햇님 구경 못 할 줄 알아!(나가버린다) 쿠웡 : 미안하네… 하지만 내 손님으로 있는 동안은 누구도 자네들에게 손댈 수 없어. 토오루 : 그건 상관없지만… '량'이라니, 대체 무슨 일을…? 쿠웡 : 그건 지금부터 설명하지. 쿠웡이 작전실 한쪽을 가리킨다. 구세기의 콘솔 옆에 침대가 놓여있고, 그 위에 한 소녀가 접속상태인 채로 잠들어 있다.
쿠웡 : 정확히 말하면 다르네… 량은 그때 서포트를 위해 넷에 접속해 있긴 했지만, DOS 공격으로부터는 운좋게 벗어났지. 토오루 : 그럼 어째서…? 쿠웡 : 량의 뇌내칩은 버그가 있는 결함제품이야. 리바이아산과의 접촉으로 그 버그가 유발되어 버린 모양이네. 바첼러 : 버그가 있는 뇌내칩이라고? 아저씨, 뇌내칩의 덤프리스트를 봐도 돼? 쿠웡 : 그래, 상관없다. 바첼러 : (검색해 보고)이거, 표준 뇌내칩이 아니잖아. 쿠웡 : 그 말대로다. 역시 넌 아는 모양이군. 바첼러 : 아저씨… 이거?! 쿠웡 : …….(고개를 끄덕인다) 토오루 : 저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바첼러 : …이 여자를 혼수상태에서 깨우려면 생체소자(바이오칩) 코드를 패치해야 돼. 쿠웡 : 그래… 하지만 그건 내 능력으로는 힘든 작업… 그렇지만 바첼러 너라면 틀림없이 할 수 있을 거다. 바첼러 : 아아… 아마 될 것 같아. 해 볼게.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모르는 일투성이, 어차피 여기서 나갈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렇게 하여 테러리스트 아지트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 . . 이 꿈을 꾸는 게 몇번째일까? ??? : 너 있지, 가끔은 밖에서 노는 게 좋다? 몇 번이고 보았던 그 산장 안에서, 덩치 큰 소년이 질린 듯한 얼굴로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다. 소녀 : …….(계속 퍼즐을 풀고 있다) 소년 : 쳇, 무시하지 말라고. 이딴 퍼즐이 다 뭐야!(퍼즐을 발로 차 날려버린다) 소녀 : 아앗!! 소녀는 놀란 듯 소리치며, 산산이 흩어진 퍼즐을 슬픈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소년 : 뭐, 뭐야… 네가 날 무시해서 그렇잖아!(뛰쳐나간다) 그리고, 방 안에는 슬픈 얼굴로 퍼즐을 보고 있는 소녀가 한 사람…. 토오루 : 저 있잖아, 내가 고치는 거 도와줄 테니까…. 소녀 : ……. 소녀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곧이어 슬픈 웃음을 떠올리며 고개를 젓는다. 소녀 : 고마워… 그치만 이건 나 말고는 못 고쳐…. . . . 토오루 : ……. 또 이 꿈인가…. 어쩌면 이 꿈은 내 잃어버린 어린 시절 기억인지도 몰라…. 레벨7에 온 지도 1주일이 지났다. 그 동안 바첼러는 내내 작전실에 틀어박혀서, 량이라는 소녀의 뇌내칩 코드와 씨름하고 있다. 인사라도 하려고 들른 작전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을 살펴보자, 작업에 열중인 바첼러를 상대로 수작을 거는 겐하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계속 작업중인 바첼러의 모습이 보인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광경인데… 언제 어디서였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겐하의 수작이 도를 더해가자, 주인공은 할 수 없이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보인다. 겐하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나가버리고, 바첼러가 살며시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만, 인사를 하면서도 그녀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는다. 방해가 될까봐 작전실을 나오는 주인공. 정시가 되면 밤이 찾아오고 인공조명이 꺼진다. 태양이 비치지 않는 지하에서 생활 리듬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바첼러는 오늘도 자리에 돌아오지 않고…. 아지트에서 1주일을 보내는 동안, '지루함'이 최대의 적이 되었다. 렌, 리바이아산, 타치바나 사장, 1소대 동료들… 생각할 것도 할 일도 많은데… 아니, 생각할 일이 너무 많아서 행동을 주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휴대단말을 꺼내들고 넷에 몰입하자 곧바로 경고가 울려퍼진다. 방송 : 당신이 침입한 구역은 현재 AI의 시뮬레이션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즉시 대피해 주십시오. 잠시 망설이다가 구조체 안으로 진입하지만, 경고와는 달리 시뮬레이션에 이상은 없다. 구조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다중 봉인은 렌을 봉인한 채 굳게 잠겨 있다. 토오루 : …렌…. . . . …그래, 그것은 병원의 어느 방에서 단말을 통해 보았던 광경… 아주 옛날의 광경이다. ??? : 아직 일러… 만약 실패하면 한 소녀가 목숨을 잃게 된다! 단말을 향해 있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선생 2명이 통로에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상냥한 남자선생님과 무서운 여자선생님…. 여선생 : 이봐… 예산을 더 얻기 위해서라도 우린 이제 실적을 올려야 해. 알겠어? 남선생 : 실적이라면 나오고 있어. 모든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 않나! 여선생 : 당신이 말하는 '순조'라는 건, 의뢰주 입장에서 보면 제자리걸음이나 마찬가지라고…. 알겠어? 이번 주 안으로 첫 몰입시험에 들어갈 예정은 변경이 없을 거야. …그리고 나서, 무언가 아주 슬픈 일이 일어났다. 어떤 사건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 후로 우리들은 시골 산장에 살게 되어…. ??? : 자아 모두들, 밥 다 됐어~ 그래, 이곳은 우리들의 산장… 산장의 아침은 언제나 기분좋았다. ??? : ……. 방 한쪽 구석에서는 여자아이가 혼자서 퍼즐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른들도 풀지 못하는 엄청 어려운 퍼즐이었지…. 경단머리 소녀 : 어이, 퍼즐은 잠시 멈추고 빨랑 밥 먹어. 퍼즐 푸는 소녀 : …응, 조금만 더 하면 돼. 경단머리 소녀 : 자… 신문 그만 읽고 식사해. 매너 나쁘게. 경단머리를 한 중국풍의 여자아이가 핀잔을 하자, 안경을 쓴 남자가 곤란한 듯이 머리를 긁적인다…. . . . 렌 : …오빠….
토오루 : 렌…?! 렌 : 거기 있는 거 오빠 맞지…? 틀림없다. 렌의 목소리는 두터운 문 건너편으로부터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들려오고 있다…. 토오루 : …렌, 별일 없었지…? 렌 : 응… 근데 아무리 해도 이 문을 빠져나갈 수 없어…. 토오루 : 좋아, 기다리고 있어. 이런 문 정도는 지금 해킹해서 열어 줄 테니까. 렌 : 아, 안돼… 오빠, 무리하면 안돼! 토오루 : 그치만 네가 이런 곳에 갇혀있는 걸 그냥 내버려둘 순 없잖아… 렌도 이런 데서 혼자 있는 건 싫지? 렌 : 그건 그렇지만…. 곤란한지 렌은 입을 다문다… 틀림없다. 렌은 무언가를 내게 감추고 있다. '렌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라'던 타치바나 사장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용기를 내어, 렌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한다. 토오루 : …렌, 있잖아… 그 리바이아산… 검은 구체하고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거니? 렌 : ……. 토오루 : 렌, 그녀석들… 타치바나 사장은 너한테 무슨 일을 시키려는 거야? 렌 : 으응…. 그 사람들, 날더러 그애를 얌전하게 만들라고…. 토오루 : '그애'라면, 리바이아산 말이야? 렌 : 응… 근데 이젠 틀렸어… 그앤 더 이상 내 말을 안 들어…. 토오루 : '이젠 안돼'라는 건, 예전엔 리바이아산을 조종할 수 있었다는 거야? 렌 : 으응… 전에는 난폭하게 굴다가도 내가 부탁하면 금방 얌전해졌어… 그런데…. 렌은 괴로운 듯 입을 다문다… 그러고 보니, 리바이아산은 렌의 정신상태에 호응하듯이 움직인다고 타치바나 사장이 말한 적이 있다…. 토오루 : …렌, 리바이아산은 네 기분에 반응한다고 했지? 렌 : …응. 리바이아산을 억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면, 렌이 자신의 감정을 추스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가…. 토오루 : …렌, 나랑 만나는 동안에 뭔가 슬픈 일이라도 있었니? 렌 : …아냐, 오빠랑 같이 있는 동안엔 정말 즐거웠어…. 토오루 : 그럼 어째서? 렌 : …처음엔 오빠를 보고 있기만 해도 좋았어. 그러다가 운좋게 오빠랑 이야기를 하게 되고… 친해질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 근데… 그런데… 오빠하고 친해지는 바람에… 그것만 가지고는 참을 수 없게 돼서…! 토오루 : '그것만'? 렌 : 나, 오빠랑 현실세계에서 같이 놀고 싶어!! …렌은 진짜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렌의 훌쩍이는 목소리는, 지금은 울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토오루 : 렌, 기다리고 있어… 역시 널 놔두고 갈 수는 없어! 이딴 봉인, 지금 당장이라도 풀어줄게!! 렌 : 안돼…! 그러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토오루 : 그럼 난 어떻게 하면 되니? 렌 : ……. …오빠, 소원이 있어…. 토오루 : 뭔지 말해 보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들어줄 테니까. 렌 : …부탁이야. 내 몸을 찾아 줘…. 토오루 : 몸이라니… 실체 말이야? 렌 : …응. 확실히, 전자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렌에게도 실체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토오루 : …그렇구나. 그럼 실체가 어디 있는지 아니? 렌 : 아니… 계속 내 몸을 찾으려고 해 봤지만 소용없었어… 하지만 오빠라면…. 토오루 : 알겠어. 찾아 줄게. 나도 현실에서 렌을 만나고 싶으니까. 렌 : 오빠… 고마워! 문 너머로 들려오는 렌의 환성을 듣고, 내 기분도 조금은 편안해진다. 토오루 : …그런데, 실체를 찾는 거랑 리바이아산을 조종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어? 렌 : 으, 으응…. 오빠랑 현실에서 만나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지는 걸…. 이 쓸쓸한 기분이 가라앉으면… 아마 그애도 얌전해질 거야. 토오루 : 리바이아산을 막을 수 있다는 거니? 렌 : 응… 그애도 나처럼 외로운 거야. 단지 갓난아기처럼 뭘 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을 뿐…. 토오루 : 리바이아산이 외롭다고…? 렌 : 나, 더 이상은 그앨 막을 수 없어… 빨리 찾아내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질 거야…. 토오루 : 큰일이라니…? 렌 : ……. …오빠, 이젠 돌아가… 오빠가 온 걸 그애가 알아차리기 전에…. 토오루 : …그래도…. 바첼러 : 토오루, 네가 여기 있어 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 돼. 토오루 : …바첼러, 이제 일은 끝난 거야? 바첼러 : 응, 끝났어…. 렌 말대로, 네가 여기 있어 봐야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게다가 혼자서 다 하려는 건 네 나쁜 버릇이지…. 토오루 : …그래, 알았어…. 넷에서 이탈하여 쿠웡이 기다리는 작전실로 향하는 두 사람. 으스대며 경과를 설명한 바첼러는 콘솔을 조작하여 량의 뇌내칩에 있는 버그를 수정하고, 몇 시간 후면 결과가 나올 거라며 자신있는 표정을 짓는다.
바첼러 : 감사라…. 아저씨,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어째서 이 여자랑 내 칩의 개발코드가 똑같은지. 토오루 : 뭐라고?! 쿠웡 : ……. 토오루 : …그러고 보니, 렌도 동일한 개발코드라고 했지? 쿠웡 : …알겠다. 량이 눈을 뜨면 전부 이야기하지…. 바첼러 : 꼭이야!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는 쿠웡을 남겨두고 작전실을 나서는 두 사람. 지하도시에 아침이 찾아온다. 밝기를 더하는 인공조명과 사람들의 수런거림에 눈을 뜨는 주인공. 밖을 내다보자, 전투원들과 섞여서 일반인으로 보이는 여성과 아이, 노인들이 아침 준비를 하고 있다. 토오루 : '흉악무비한 테러리스트 집단'이라…. 냄비를 젓는 여자, 그 주위에서 뛰노는 어린아이, 잠이 덜 깬 얼굴로 광장에 모여드는 사람들, 아기를 어르고 있는 허리 굽은 할머니…. 토오루 : …이게 우리들이 싸우고 있던 상대인가…. 바첼러가 눈을 부비며 '옛날 영화에 나오는 산적마을과 똑같다'고 감상을 말한다. 차이점이라면, 이곳은 햇볕도 닿지 않는 지하 깊숙한 곳의 핵 방공호라는 것뿐. 바첼러 : 슬슬 그 량이란 여자도 깨어날 때가 됐군. 토오루 : 네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말이지. 바첼러 : 뭐야, 너무하네… 내 솜씨를 못 믿겠다는 거야? 토오루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 : 괜찮아. 그애 솜씨는 확실하니까. 경단머리를 한 소녀가 입구에 서서, 수줍은 웃음을 떠올리며 이쪽을 보고 있다. 바첼러 : 정신이 들었구나… 그러면…. 소녀 : 고마워. 내 이름은 량… 네 덕분에 다시 돌아왔어.(손을 내민다) 바첼러 : (악수하며)다행이다… 사실은 좀 불안했거든. 난 바첼러, 잘 부탁해. 소녀 : 아… 당신은? 토오루 : 아아… 난…. 자기소개를 하려다 나는 입을 다문다. 작전실에서 만나기 훨씬 전부터, 이 소녀와는 어딘가에서 만난 듯한 느낌이 든다. 어이, 퍼즐은 잠시 멈추고 빨랑 밥 먹어. 그래, 이 얼굴은 그 이상한 꿈 속에 나왔던 소녀와 많이 닮았다….바첼러 : 왜 그래 너희들…? 아는 사이야? 토오루 : 아, 아니… 처음 뵙겠습니다. 전 소우마 토오루…. 량 : 그렇겠지… 저도 처음 인사드려요. 량이라는 소녀도 어딘가에서 나를 본 기억이 있는 걸까… 당황한 얼굴로 인사를 한다. 바첼러 : 뭔가 이상한데… 토오루, 왜 그러는 거야? 토오루 : 사실은… 예전에 량하고 어딘가에서 만났던 것 같아서…. 량 : 에? 그럼 정말일지도 모르겠네. 나도 어디선가 토오루랑 만난 듯한 느낌이…. 바첼러 : 기분 탓인지도 모르잖아…. 쿠웡 : 기다리게 했군… 전부 모인 건가? 겐하는 어떻게 됐지? 여기로 오라고 말해 뒀는데…. 토오루 : 겐하한테…? 쿠웡 : 그래. 이제부터 할 이야기에는 겐하도 깊은 관계가 있지. 량 : 그러고 보니 그녀석 부하들도 안 보여…. 지하도시에 경보가 울려퍼진다. 군과 V·S·S가 현실과 넷에서 동시에 공격해온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쿠웡은 주인공과 바첼러를 데리고 탈출하도록 량에게 지시한다. '두 사람은 타치바나 레이카와 싸우기 위한 귀중한 전력'이라는 말과 함께. 결국 량의 손에 이끌려 레벨7을 뒤로 하는 두 사람. 8장 특수소자 -ILLEGAL CHIP- 끝 |